기억할 것이 많아 즐거운 이 계절
요즘 학교가 참 예뻐서 학교 올 맛이 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울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난다. 하루하루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이 많아 마음이 더 바빠지는 계절이다. 학교 안을 걸을 때면 늘 카메라를 켜놓았다가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바로 사진에 담는다. 내 발 앞의 하늘과 나무와 공기가 마음대로 흩어지지 않도록. 가을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겨울이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특히나 이번 학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같이 전공 수업을 들으러 인문대를 오는데, 학교생활 4년 차가 되어서야 인문대가 이렇게 예쁜 곳인 줄 처음 알았다. 인문대에는 나무가 알록달록하니 예쁜 길이 참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색의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색채의 세계 속에 자리하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중앙도서관을 지나 인문대로 들어서는 길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탁 트인 하늘만 올려다 보며 걷는 것이 이젠 일상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무만큼, 아니 하늘만큼 높은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채로 강의실에 들어가는 날은 지루할 법한 수업도 퍽 재미있게 들리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곤 한다. 공강 시간에도 강의실에 멍 하니 앉아 있는 대신 잠시 바깥에 나와 평소에 잘 밟지 않던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처음 보는 꽃이 있으면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제 저녁에는 강의실에 여유 있게 도착해서 테라스로 향했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초점이 닿는 가장 먼 곳을 보았다. 저 멀리로 속내를 감춘 듯 약간 흐릿한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붉은색과 초록색과 그 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무수한 색들이 산봉우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테라스 구석에는 작은 화단도 있었다. 화단 앞으로 다가가니 눈에 띄는 하얀 꽃 하나가 있어 가까이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자리에서 저 꽃의 존재를 인지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자기 존재를 알아본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꽃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자연을 보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요즈음, 나는 삶을 여유 있게 살아가는 법을 (아마도 처음으로) 배우고 있다. 모든 날들을 저마다의 이유로 소중하게 기억하는 법을 배우는 기쁨의 연속이다.
자연은 매일 다른 이유로 아름답다. 하루하루 누군가의 마음에 간직되는 삶만큼 뜻 깊은 삶이 또 있을까. 나의 사진에 담긴 이름 없는 나무들과 커다란 하늘의 삶을 동경하며, 나도 매일 다른 이유로 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 한 줄 적어본다.
매일 다른 얼굴의 행복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