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토, <연극과 그 이중>을 읽고
바람은 세상의 절망을 끌어안는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소용돌이는 세상을 요란히도 휩쓸고 지나간다.
절망이 희망과 함께 버려지는 일이 나는 언제나 아프다. 어째서 우리는 늘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함께 떠나보내는지. 희망만 안고 마냥 살아가면 좋을 것을. 어째서 세상은 우리에게 나쁜 것은 다 버리고 좋은 것만 가득한 삶은 허락하지 않는지. 그럼에도 바람은 절망을 제 안에 품고 나아간다. 그 나아감은 절망에 빠진 이들로 하여금 다만 제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바람의 존재 방식이다.
바람에는 이름이 없다. 나는 이름 없는 절망이 좋아 하늘을 본다. 나를 휩쓸고 가는 것이 누구의 절망인지 모르기에, 나는 바람에 내 몸을 맡기며 안도할 수 있다. 가끔은 누구의 것일지 모를 절망을 붙들고 울어도 보고 싶다. 세상의 울음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잠시나마 허락하고 싶다. 절망이 그리도 반가울 때가 있다.
멈추어 귀를 기울이면 언제나 바람은 절망의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절망이 제 흔적을 남기는 고유의 방식이다. 고통은 언제나 말이 없었으나, 바람과 하나가 되면 고통은 한 목소리를 내며 세계의 모든 아픔에 경의를 표한다. 말 없이 홀로 아파하던 사람들의 마음에 늦게나마 가 닿는다. 바람은 위로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당신,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했나요. 당신을 안아주러 내가 왔어요. 바람은 말 없이 고통을 안아주고, 흔적 없는 눈물 한 방울 훔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나는 언제나 바람이 내게 오기를 기다린다. 때가 오면 절망의 소리를 들으며 이름 모를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싶다. 내 아픔도 조금은 나아질 터이니. 그러면 나는 아무도 아닌 내가 될 것이다. 나는 세상이 되고, 세상은 내가 될 것이다.
바람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 세상을 다 품는다. 바람은 세상과 함께 점점 거대해진다. 나는 바람이 날 집어삼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거침없는 소용돌이 한가운데 절망과 희망이 뒤섞여 하나가 되는 순간,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마도 나는 바람 속으로 갈 것이다. 세상에 남겨진 모든 이의 절망과 희망과 뒤섞여 이름 없는 하나의 바람이 되고 싶다. 나는 모든 절망과 하나 되어 이름 없는 절망으로 세상에 오래 남을 것이다.
아직 끌어안지 못한 절망을 영원히 찾아 헤매면서. 누군가의 새로운 생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