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 展> '가난한 조각'을 보고
아이는 오늘 먹은 음식에 '비닐'이라고 썼다.
"엄청 커다란 비닐이 있었는데, 내가 그 안에 갇혔어.
비닐밖에 안 보였는데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
내가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어.
재밌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놀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 하고 불러봤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여길 빨리 뚫고 나가야 엄마를 만날 수 있는데.
그래서 비닐을 조금씩 손톱으로 뜯어서 먹었어.
비닐 쪼가리를 세 번 꿀꺽 삼키니까 제법 큰 구멍이 났어.
그걸 손톱으로 부욱- 찢어서 밖으로 나왔어.
밖은 환한데 엄마는 어두웠어.
등을 돌리고 서 있었어.
내가 나왔는데도 엄마는 나를 안 봤어. 절대 안 볼 것 같았어.
그때 갑자기 그 커다란 비닐이 미워졌어.
그게 나를 가두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나를 좋아할 텐데.
그래서 비닐을 손톱으로 더 뜯어서 먹었어.
몇 번을 꿀꺽 삼켜서 다 먹으니까 그 미운 게 내 뱃속에 다 들어왔어.
나는 이제 미운 사람이 된거야.
엄마는 내가 미워졌으니까 나를 불쌍해 하면서 안아줄 거야."
2023. 09. 07.
서울대학교 미술관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 展>
김문기 작가, '가난한 조각'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