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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처 Jul 23. 2024

셔틀콕 튕기기

3학년이 패드민턴채를 잡으면

  학교에서 하는 체육 수업에는 이상한(?) 도구들이 자주 동원된다. 올림픽 같은 데 나오는 정식 스포츠 종목을 좀 더 쉽게 간소화하여 뉴스포츠라고 하는 게 학교 현장에 많이 도입되었는데, 이를테면 야구와 비슷한 티볼이라든지 농구와 비슷한 넷볼 같은 걸 말한다.


  체육 창고를 정리하다가 정리바구니에 패드민턴 채가 많이 쌓여 있는 걸 보고 다음 체육 수업을 정했다. 아이디어란 이렇게 무심코 저장해 둔 창고에서 먼지를 털어 꺼내 쓰는 법. 패드민턴은 배드민턴에서 사용하는 셔틀콕을 탁구채 같은 걸로 대신해 치는 종목이다.


  이미 6학년에서는 배드민턴을 가르친 터라 3학년 위주로 패드민턴 수업을 설계했다. 구기종목의 기본은 무엇보다 라켓과 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설명해 주는 대로 패드민턴채를 잡고 각자 셔틀콕을 집어가 튕기기를 시작했다. 연속으로 10번 튕기는 걸 목표로 해보라고 했는데 나도 처음 해봤을 때 생각보다 10개 하기가 어려웠다. 배드민턴채는 헤드가 넓고 탄성이 있는 반면 패드민턴은 핸들러 라켓이라고 하는 나무 재질의 채라서 셔틀콕을 쳤을 때 공의 체공시간도 짧고 공을 받을 때 손목 각도를 잘 조절하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반복해 튕기는 게 어렵다.

  3학년 아이들은 10개가 너무 어렵다며 최고 기록 6개 했어요, 하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연습하길 반복했다. 단순 반복적인 익숙해지기 놀이인데 아이들은 의외로 집중력 있게 꼭 10개 목표를 채우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요령이 생겨 10개 튕기기 목표를 넘어서 자기 기록을 경신하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20... 30... 급기야 40개를 넘는 경우도 있었는데 역시 신기하게도 다 같이 그날 처음해보는 건데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들이 그랬다.


  "선생님, 다른 반에서는 몇 개가 최고기록이에요?"


  "누가 40개 했던 것 같은데."


  "우와 40개요?"


  별 거 아닌 일에도 아이들은 궁금해하고 금세 도전 의식까지 생긴다. 셔틀콕 튕기기를 연속 10개 이상 무리 없이 할 정도만 돼도 이제 네트를 두고 게임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선생님 저 50개 넘었어요!"


  3학년 유은이는 운동 신경도 좋고 승부욕이 있어서 남자 애들 사이에서도 진두지휘를 하며 항상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애다.


  "이야, 선생님도 50개는 어려운데."


  이게 전혀 과장이 아닌 게 저 조그마한 나무채로 셔틀콕을 한 번도 떨어트리지 않고 연속 50개를 튕기고 있는다는 건 배드민턴채로 100번, 150번을 안 떨어트리고 튕기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실수를 안 하도록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그마한 3학년 여자아이가 저걸 50번 넘게 치고 있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어느새 넋을 놓고 유은이가 셔틀콕을 튕기는 걸 보고 있기도 했다.


  "60개면 3학년 최고 기록이죠?"


  두말할 것 없이 최고기록이었는데 이제 다른 아이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유은이는 계속 셔틀콕 튕기기 자기 기록 경신에 도전했다.


  키는 내 허리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서 공중에 튀어 오르는 셔틀콕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부모가 봐도 너무 예뻐할 것 같은 한 장면이랄까. 혼자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열심히 하는 걸 지켜보는 건 교사로서도 흐뭇한 일이었다.


  ...70...80...90...100!


  와! 하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나한테 달려오면서 유은이가 셔틀콕 튕기기를 100개 넘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처럼 이미 같이 지켜보고 있던 애들도 짝짝 박수를 치고 경탄하면서 대단하다며 즐거워했다. 이런 건 뭘까? 혼자 열심히 자기 기록을 갈아치우는 걸 보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기분이란. 


  나는 어떻게 해야 100개를 안 떨어트리고 할까, 궁금해 역시 채를 쥐고 셔틀콕을 공중으로 튕겨보았다. 일단은 20개 가까이 거의 제자리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30... 40... 50... 어떤 감각보다도 셔틀콕 헤드가 나무 채에 닿을 때의 '딱' 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게 기분 좋았다. 머리 위로 오르내리는 셔틀콕만 보고 있으면 주변의 소음도 그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이런 거였구나. 네트를 넘나드는 셔틀콕을 따라가면서 함께 경기하는 것도 재밌겠지만 이건 더 단순하고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문득 개수 세는 걸 까먹고서 다시 유은이를 발견했을 때 이제 유은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셔틀콕을 안 떨어트리면서 오래 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잘할 수 있어. 신이 나서 설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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