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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Feb 10. 2020

Episode 07. 다양한 색을 보는
즐거움

나를 찾아 떠나는, _Seville (01.13. Mon)



한 마디로 경이로웠다. 살바도르 대성당에 오기까지 많은 성당을 가봤다. 포르투에 있는 대성당과 리스본의 성당과 세비야에 있는 세비야 대성당까지. 성당에 가면 으레 장엄함과 엄숙함을 느꼈다. 살바도르 대성당도 마찬가지였다. 내부는 대부분의 성당과 비슷했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다른 느낌에 데려다 놓았다. 안을 둘러보다가 예배를 보는 좌석에 앉았다.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소리가 나를 압도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감동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왜 그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살바도르 대성당이 가진 분위기 자체가 나를 눈물이 나도록 만들었다. 파도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나는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를 압도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소리를 녹음했다. 소리를 들으며 살바도르 대성당에 와서 경험했던 감정의 물결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작품과 조각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봤다. 성당을 짓기 위해 들어간 노력과 사람들의 손길을 헤아려본다.





살바도르 대성당에 오기 전, 우리는 한가롭게 숙소에서 출발했다. 아침 일찍 만나지 않았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10시에 로비에서 만났다. 늦게 출발했다고 생각했건만, 우리가 보려 하는 장소를 가기에는 이른 시각이었다. 우리는 고민하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부터 가기로 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황금의 탑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씨였기에 우리는 옷깃을 붙잡으며 황금의 탑으로 갔다. 마침 월요일은 요금을 받지 않아서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실 형태로 내부가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실에서 나와 계단을 올라갔다. 높이가 꽤나 높아서 한 칸씩 힘겹게 올라갔다. 전망대까지 끝까지 올라갔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는 건물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틈새 너머로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 각기 다른 사람일 텐데도 찬찬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은 똑같아 보인다.





황금의 탑에서 내려온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언제 어디서든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배꼽시계가 줄기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세비야 대성당 근처에 있는 타파스 바에 갔다. 우리는 어김없이 술을 시켰다. 샹그리아였다. 어제저녁에 마셨던 샹그리아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레몬과 사과만 동동 띄워져 있지만 여러 과일의 상큼함과 은은한 달콤함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입안에서 맛이 오래 머무르도록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금세 마셔버리지 않기 위해 아껴 마셨다. 



    

소다가 들어가 있어 톡 쏘는 맛이 과일의 상큼함과 조화를 이룬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향긋함이 밀려와 기분이 좋다.


활기차고 흥이 넘치며 싱긋싱긋 웃어주는 직원들. 그 덕에 가게 분위기가 에너지로 넘친다. 나도 덩달아 에너지가 솟는 기분이다.




배꼽시계를 조용히 잠재우고 세비야 대성당에 갔다. 입장료를 내고 오디오 가이드도 듣기로 했다. 성당에서 사진만 찍고 나올 때랑 확실히 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진만 찍어서 모든 성당이 똑같아 보였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니 전혀 똑같지 않았다.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창작자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 깊은 이해가 가능했다. 내부뿐 아니라 외부도 봤다. 오렌지 나무가 사방에 심어져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오렌지의 싱그러움이 전해지는 듯했다. 




포르투 대성당에서는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면 여행지가 주는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는 여행자들이 있다.



세비야 대성당 꼭대기로 올라가며 찍었다.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집들을 햇빛이 환하게 비춘다.




여행자들의 설렘이 가득한 세비야 대성당을 뒤로하고 추로스 맛집으로 향했다. 스페인에 오면 먹어봐야 할 것 중에 추로스가 있었다. 아침에 잠깐 와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앉을자리가 있었다. 추로스와 초콜릿 라테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거대한 추로스가 나왔다. 한국에서 먹어봤던 추로스 보다 훨씬 컸다. 각자 한 손에 추로스를 들고 초콜릿을 듬뿍 묻혀 먹었다. 의외의 맛에 놀랐다. 언니들의 표정도 나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달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추로스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튀긴 추로스는 바삭하면서도 짭짤했다. 달콤함은 초콜릿 라테에서만 나왔다. 익숙하지 않은 맛에 놀랐지만 먹어보면 볼수록 끌리는 맛이었다. 완벽한 '단짠'의 조합이었다. 마지막 하나까지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아직도 입안에 맴도는 맛에 입맛을 다셨다. 이 맛이 그리울 것 같다. 세비야에 다시 온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추로스를 먹으리라!



        

반죽을 길쭉하게 튀긴 다음 큼지막하게 잘라내어 주는 추로스.
추로스를 먹고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를 알았다. 이 오묘한 맛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이 분명하다!




초콜릿의 달달함과 추로스의 감칠맛을 한껏 느끼며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6시 티켓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은 우리는 지나왔던 곳을 되돌아갔다.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고 카페에서 쉬며 시간을 때웠다. 6시 티켓을 산 사람들과 가이드 투어를 들었다. 스페인인 가이드가 스페인과 영어로 설명했다. 최초로 투우를 시작한 소와 투우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널찍한 투우 경기장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투우를 하는 이유는 뭘까. 이 위험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까지 했었다니. 약한 인간이 소에 맞서서 펼치는 광경이 사람들에게 스릴감과 흥분을 안겨주기 때문일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은 나라면 편히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메트로폴 파라솔에 갔다. 밤에 유명한 장소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세비야 시내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 어두워진 시내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언니들과 웃고 떠드는 순간을 선사한 파라솔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에 유명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각각의 장소가 지닌 다양한 색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이 지닌 다양한 색을 느끼고 보는 것도 좋았다. 항상 같은 사람들과 다녀 다른 조원들과 만나볼 기회가 적었다. 저녁에 다른 사람들과 햄버거 가게에서 만났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인솔 팀장님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모임을 주최한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번호대로 사람들을 섞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고 다른 분들이 내가 있는 식탁으로 왔다. 회사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다 퇴사하고 여행 온 사람, 중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방학을 기회로 여행 온 사람  등 여행을 온 이유가 제각각 달랐다. 각자의 색 역시 다양했다. 이번 여행에 온 분들은 선생님과 대학생이 많았지만 특이한 분도 있었다.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항해사로 배를 몰다가 휴식 겸 여행을 온 사람이 있었다. 그분이 지닌 분위기가 유독 눈에 띄었다.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어디에 속해 있기보다 유랑하듯 이리저리 떠도는 것에 익숙한 사람 같았다.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말하지 않고 주로 들었지만 오히려 듣는 것이 반가웠다. 사람들이 지닌 색채의 다채로움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나의 개성에 독특한 색깔을 입힐 용기를. 세비야는 나에게 기억에 남을 도시가 되었다. 여행은 다른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세비야. 여행 온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마주 보고 대화하며 각자의 개성을 알아가는 시간 자체가 준 즐거움으로 세비야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색을 보며 나에게 어울릴 색깔을 어떻게 찾아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 점차 끝에 다다르고 있어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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