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초가 뭐길래

초에 불 붙이기는 어려워

by 울새


대학교 신입생 때 공강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한답시고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그 부근 성당에 우연히 들어간 적이 있다. 너무나 오래된 기억이라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려보면 아담한 마당에 하얀 성모상이 있고 그 바로 옆에 티라이트 캔들처럼 생긴 작은 초를 넣어놓은 공간-나중에 알게 된 이 공간의 정식 명칭은 봉헌초 제단이었다-이 있었다. 당시 처음으로 성당 마당에 발을 들인거라 신기해서 두리번대다가 마침 마당을 지나시던 수녀님과 눈이 마주쳐서 놀라 후다닥 성당을 빠져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천주교에서 촛불은 온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성인의 성상 앞에 초를 켜 놓는 것은 성인들에게 주어진 덕을 상징하고 전구를 청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성당 마당에는 성모상 바로 옆에 봉헌초 제단이 자리잡고 있다.


이 봉헌초 제단에 초를 봉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간혹 제단 옆에, 대부분 본당 내에 봉헌용 컵초가 있는데 이 컵초의 가격은 거의 1000원이다. 간혹 2000원도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두 1000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판매는 무인으로 이루어지고 돈을 넣는 통에 1000원을 넣은 뒤 원하는 컵초를 하나 꺼내어 봉헌초 제단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단의 투명문을 열면 그 안에 놓여진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이고 초를 제단 위에 놓은 뒤 문을 닫고 기도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이 컵초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불을 심각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스렌지가 아닌 전기렌지를 쓰는게 익숙한 사람이기에 버튼을 누르면 혹은 장치를 돌리면 불이 나온다는게 나한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나는 라이터를 어떻게 쓰는지 방법도 모르는 사람이다.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라이터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논문 때문에 세균학 실험실에 짧은 기간 있었는데 그 때도 라이터로 알콜램프를 켜지 못해 항상 고생했다. 보다못한 부모님은 나에게 라이터 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시도를 하셨지만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라이터로 컵초에 불을 붙여 초를 켜보려 하니 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주변에 지나가는 분이 계시면 도와달라고 하자, 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기다려보기도 하고 라이터 켜기가 어려워 하며 중얼대기도 했지만 그 날따라 유난히 지나가는 분이 눈에 띄질 않았다. 오전 미사 시간은 가까워져가고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를 한참 고민한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는 찾았다. 봉헌제단 내부에 몇 가닥의 초 심지가 놓인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출처 : 내 인스타(@bipolar_paroo)


겨우 불을 붙이고 나서 간단간당하게 오전 미사를 드릴 수 있었고 내 반드시 사용하기 쉬우면서 주둥이가 긴 라이터를 하나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봉헌초 올리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치 못했지만 신입생 시절 그 때 우연히 보았던 초들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고 또 내가 직접 봉헌초를 올리게 되니 새롭게 느껴졌다. 봉헌초를 올리고 드린 기도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왜인지 마음이 따수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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