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성모의 밤
본당 주보에서 성모의 밤을 한다고 읽었을 때 '나는 예비신자인데 가도 될까?'하는 웃기고도 바보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주임신부님께 "저 예비신자인데 성모의 밤 가도 되나요?"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멍청하면 용감하댔나. 친구에게 물어봐도 될 것을 신부님에게 여쭤보다니. 아무튼 그렇게 해서 확인?을 받고 핸드폰 캘린더에 성모의 밤 일정을 입력한 뒤 난생 처음 성모의 밤을 다녀왔다.
성당까지 동생이 차로 태워줬는데 동생은 회차해서 나가기 쉽게 성당 마당에 잠깐 들어갔다가 차를 돌려서 나가겠다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입구 차단기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아마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라 그랬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차단기 앞에서 내리고 동생은 후진을 했다가 조심스레 빠져나가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성당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도문이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받고 봉헌초를 하나 샀다. 요전에도 봉헌초를 파란색으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성모의 밤 봉헌초도 파란색을 골랐다.
생각보다 일찍 본당에 도착해서 멍하니 앉아 하늘을 쳐다보다가 잠시 핸드폰을 쳐다봤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항상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가는 하늘이고 가끔씩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와 예쁘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이 날도 구름이 하늘 곳곳에 신기한 무늬를 수놓고 있어서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성당 마당에 제단이 차려지고 처음 보는 광경에 연신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다. 성모의 밤은 야외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예비자 교리 때 배운 것이 있어서 그런지 제단 위와 그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대충 어떤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성모의 밤 시작은 묵주기도로 한다고 사전에 공지받아서 5단 묵주를 들고 왔다. 명동성당에서 수도회 큰잔치를 할 때 부스마다 스탬프랠리를 다 찍고 받은 묵주인데 무려 대주교님 축복을 받은 묵주다. 아직 새내기 초짜는 이런 것 하나하나도 신기함의 연속이다. 그래도 세례를 받으려면 기도문을 필수로 외워야 해서 묵주기도도각 신비와 각 단과 어떻게 하는지까지 외운 상태라 굿뉴스 앱을 보지 않고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정말이지 기도문 외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유용하다니.
묵주기도가 끝나고 미사 때와 비슷하게 예식이 진행되었는데 각자의 봉헌초에 불을 붙여 준비된 제단에 올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불을 심지나 성냥에 붙여 나눠주시고 그거로 불을 붙이는 식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불이 무서워서 덜덜 떨다가 옆에 분이 불을 붙이고 나에게 불을 건네주려 하셔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무서워요 불 무서워 를 연달아 말하면서 전달받지도 못하니 다른 분께서 대신 내 봉헌초에 불을 붙여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봉헌초를 들고 제단까지 가서 봉헌초를 올려야 하는데 내가 앉은 자리에서 제단까지는 약 20미텨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나는 불 붙인 봉헌초가 무서워서 손으로 들지 못하고 핸드폰 위에 올려서 간접적으로 들고 있었다. 그나마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속으로 펑펑 울다가 보다 못하셨는지 다른 분께서 내가 대신 올려줄게요 하고 도와주셨다. 성함도 세레명도 모르고 처음 뵙는 본당 신자 분들이셨지만 그 순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레벌레 성모의 밤이 끝나고 주변 의자를 정리한 뒤 살짝 지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성당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경험에 신기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덜덜 떠느라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이제 내가 진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이 곳이 내 세계관이 될 곳이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실감했다.
성모의 밤이 끝나고 성모상 찍은 성모상 사진. 앞으로도 우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주님 곁에서 전구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사진은 흔들렸지만 봉헌초 제단. 내 봉헌초는 내가 갖다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단 어딘가에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