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사복도 입고 강아지도 키운다고?

신부님 죄송합니다 저는 바보입니다

by 울새


성당을 다니기 전까지 내가 아는 신부님에 대한 이미지는 로만 칼라에 검은 수단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다니시면서 십자가를 쥐고 내밀며 "악마야 물러가라!" 라고 외치는 것이 전부였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접한 것이 전부다보니 과장되거나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이게 내가 아는 신부님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그 유명한 영화 <검은 사제들>을 보지는 않았지만 종종 미국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제가 구마하는 장면이 나오다보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비신자가 되기 전까지 나는 참으로 과장되고 잘못된 신부님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성당을 막상 다녀보니 신부님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나 종종 유튜브 또는 인스타그램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신부님도 사람이시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성물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떨려서 못가겠다 싶으면 저 신부님도 유튜브로 귀여운 동물 영상이나 쿡방을 보실거야 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실제로 그러시는지 알 수 없고 신부님을 희화화 할 의도는 없지만 너무 떨려서 가까이 가서 말 붙이기도 무서울 때 써먹는 내 나름의 팁과 같은 방법이다.


지금은 과장된 머릿속 이미지가 많이 깨졌지만 여전히 가끔 신부님이 이런 것도 하신다고? 저런 것도 하신다고? 하는 생각에 약하게 인지부조화가 올 떄가 있다. 그로 인해 웃기면서도 웃을 수 없는 에피소드도 종종 있었다.


하루는 미사 시간 전에 성당 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보를 읽고 있는데 사복 차림의 한 아저씨가 오셔서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셨다. 그 아저씨는 나에게도 인사를 하셨는데 나는 우리 집안에서 홀로 성당을 다니는 입장이라 '성당에서 나를 아실 분은 안 계신데 누구시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아저씨는 2층으로 올라가셨고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 아저씨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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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jpg 출처 : 내 인스타(@bipolar_paroo)


그리고 그 아저씨의 정체는 '사복'을 입은 주임신부님이셨다. 신부님들은 수단과 제의만 입으실거라 생각했지 사복을 입으실거라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그 아저씨가 신부님일거라 예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가톨릭인 친구에게 카톡으로 신부님이 사복을 입고다니신다고 했더니 특별한 일정이 있는게 아니면 사복을 입고 계시기도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기야, 신부님도 사람이니까 사복을 입으실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사 시간이 될 때까지 마당 구석에서 기다리며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안고 성당 마당으로 들어오셔서 강아지를 잔디밭 쪽에 내려놓으셨다. 이미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그래도 강아지 하면 사족을 못쓰는 나이기에 나는 당장 기도를 멈추고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강아지를 쳐다보며 귀엽다는 말을 연달아 했다.


강아지의 보호자로 보이는 아저씨는 강아지가 나이가 많아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강아지는 딱 보아도 나이가 꽤 되어보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몇 분간 강아지를 쳐다보다가 강아지가 볼일을 보자 아저씨는 강아지를 안고 성당 건물 옆에 있는 건물-아마 사제관으로 추정되는-로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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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jpg 출처 : 내 인스타(@bipolar_paroo)


그 강아지는 주임신부님 강아지였으며, 강아지 보호자인 아저씨는 또 사복을 입으신 주임신부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본당 주임신부님에게 인사는 커녕 강아지에 정신팔려있던 망충한 예비신자가 되어버렸다.


신부님도 사람이니 당연히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사복을 입고 다니실 수 있고 강아지를 좋아하면 강아지를 반려하실 수도 있는데 왜 나는 그걸 생각하지 못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 편견이 너무 강한건가 싶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다 들면서 동시에 두 번이나 본당 주임신부님을 알아보지 못한 나는 참 멍청하구나 싶었다.


평소 사람을 심각할 정도로 못 외우는 편이지만 이렇게까지 못 외울 일인가 싶다. 정말이지 사람 외우는 것은 너무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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