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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Mar 13. 2019

그의 삶과 그의 결정

암에 걸린 후 치료중이거나 치료가 종료되었더라도 재발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결혼을 하는 환자들이 드물게 있다. 더 드물지만 출산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는데, <숨결이 바람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가 그랬다. 치료 전 수집해둔 정자로 인공수정을 하여 아내가 딸을 출산하게 된다. 자신의 수명이 제한되어 있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관계를 맺고 만드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은 이기적인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으로 보아야 할까?

얼마전 우연히 이런 환자들에 대한 얘기를 동료 선생님들과 하게 되었는데, 본인의 예후(완치율, 생존률 등 병의 장기적인 경과를 뭉뚱그려 예후, 즉 prognosis라는 일반적인 단어로 표현한다)에 대해 정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생존률 90% 이상의 조기암을 진단받고 치료받은 사실만으로도 파혼당하거나 이혼당하는 일이 있고, 그런 일에 우리는 당연히 분노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행암의 경우에 인생의 중요한 계획, 특히 누군가와 함께 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병세에 대해 실제보다 낙관하고 있거나, 또는 애써 부정하고 있거나, 아예 완전히 착각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실제 정말 잘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하면서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병에 대해 인식이 놀라우리만큼 부족해서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환자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하는 환자들을 보면 소위 ‘인사이트(자신의 병의 예후에 대한 인식을 insight라고 부른다)가 없어서 그리 한 것이 아닌가’라며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정말 인사이트가 없어서 그랬을까. 정말 긍정적인 말만 듣고 싶어 애쓰는 것이 눈빛에 다 보이는 환자도, 좀더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어보면  늘 두려움을 품고 있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정말 해맑고 철없어 보이는 환자가 가장 큰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을 그 두려움을 마음에 품고 해야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건강한 사람들도 쉽게 결혼을 결정하기 어려운 소위 헬조선에서 결혼을 했다면 말이다. 환자에게나 그 배우자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병식에서 비롯되었던 아니건간에.

우리는 왜 그들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가 되지 못했는가. 왜 갑자기 결혼한 상대방을 외래진료실에 데려와 놀라게 되는 상대가 되었는가. 왜 남들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는가. 우리만은 그들의 편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폴 칼라니티는 자신의 병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음에도 딸을 출산하는 결정을 했다. 그가 어린 딸에게 남기고 간 말을 살펴보면 우리는 왜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


‘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데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병에 걸린 삶도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그와 그의 가족의 것이다. 우린 그의 삶과 결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에겐 그것을 적어도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온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일종의 의무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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