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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Jul 12. 2018

한가하지 않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고 온몸에 퍼졌던 종양이 대부분 없어졌고, 치료를 쉬고 일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다 나은 줄 알았습니다. 그 와중에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검사 결과 뇌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다리 힘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지만, 놀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앞으로가 두렵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기도하지만, 혼자 있을때는 눈물이 흐릅니다. 


아마 그녀는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나는 그녀를 진료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나 역시도 앞으로가 두렵고 걱정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MRI 사진에서 보이는 뇌 전이의 정도에 비해서는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조절도 잘 되고 있습니다. 보행도 잘 하는 편이고, 구역이나 구토도 없습니다. 두통이나 어지럼증도 별로 없습니다. 뇌압을 낮추기 위해 투여한 스테로이드제도 모두 먹는 약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젠 하루 5분 정도 쬐는 방사선치료가 그녀가 입원하여 받는 치료의 전부입니다.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는 것이 어떠냐고 말을 꺼내었습니다. 그녀는 난색을 표합니다. 

"선생님 제가 집이 지방이고...서울엔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 덥고 후덥지근한 장마철에 어디에서 매일같이 통원치료를 하러 다니나요..."

"응급실에는 더 위중한 환자분들이 많고 그 분들이 입원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 다음주면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있을께요."

그녀는 운이 좋게 응급실 입실 24시간 이내에 병실이 나서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메르스 이후 정부가 추진하는 응급실 체류 시간 단축정책 때문에, 응급실에서 24시간 이상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시켜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엔 큰창자에 구멍이 나서 복막염이 진행되는 초응급환자도 병실도 수술실도 없어 전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환자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한가한(!) 환자를 병실에 두고 있다는 생각에 몸이 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나가면 병원 근처의 어느 환자방을 빌려서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 방에 볕이 잘 들지, 에어콘이 나올지, 누울 공간은 충분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매끼 사먹어야 할 것이고, 매일 먹어야 하는 스테로이드와 예방적 항생제를 잘 챙겨서 먹을 수 있을지, 다리를 절다가 넘어지고 다치지 않을지, 누군가가 계속 돌봐주어야 할 텐데 보호자가 같이 있기에 괜찮은 환경일런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병원에 있는 그 누구도,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환자라면 누구나 절박함이 있고, 그 절박함은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경중을 가려서 입원을 시키고 전원을 보내고 퇴원을 시키는 마음 역시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가 되는 정글같은 현실을 방치하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정말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거리로 내보내야 하는 자괴감에 허탈합니다. 응급실에서는 정신없이 다른 병원에 연락하여 중환자들을 사정사정하며 전원시키고 있는데, 병실에서 늘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 비슷한 상태로 수개월이고 수년이고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마저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절박함과 진실이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나가면 바로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냉정함. 그 모든 것에 공감하려고 하지 않기.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생각하지 않기. 

마음에 한가함을 주지 않기 위해, 병원을 나가서 이 환자가 어떻게 지낼 지를 생각해볼 여유를 갖지 않기 위해, 마음을 바쁘게 채웁니다. 철저히 의학적 관점에서의 경중을 따져 더 필요한 환자가 더 돌봄을 받도록 하기 위해.그리고 되돌아보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를 생각하며 울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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