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컷이 맘에 안든다며 일주일도 안되어 다른 미용실에 가는 것은 거의 처음 해본 일인 것 같다. 이곳 저곳 여러 병원을 다니는 소위 '닥터쇼핑'을 하는 환자같은, 까다로운 고객이 되기 싫은 나의 강박을 이긴 것은 새로 한 머리가 ‘최양락같다’는 딸의 놀림이었다.
해외연수에서 돌아온 후 희게 길게 자란 머리를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 동네 미용실에서 염색과 헤어컷을 했다. 아들이 자주 들러서 머리를 하고 만족하던 곳이라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늘 하는 숏컷을 주문했지만 미용사A는 단발을 권유했다. 단발이 더 어울릴 것이며, 숏컷은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나는 전문가의 말을 저항없이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지 않고 일임하는 고객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럭저력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와 딸에게 들은 청천벽력같은 소리는 더 이상 이 스타일을 견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전문가 입장에서 정말 나쁜 고객은 처음엔 나에게 일임했다가 나중에 자기 맘에 들지 않게 되었다고 컴플레인하는 사람이다.
이미 신뢰관계를 형성한 전문가를 두고 모험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국 전에 계속 다니던 병원 내 미용실에 가지 못한 이유는 아직 1주가 남은 출근일 전까지는 최대한 병원 근처에 얼씬거리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어쩔 수 없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던 미용사 B는 9월 13일에 머리를 하셨는데 왜 벌써 오셨냐고 했다가 그게 작년 9월 13일이며 1년만에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전에 자르던 대로 숏컷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내 모발의 텍스처를 잘 살리기에는 단발보다는 숏컷이 더 어울린다고 했다. 어떤 텍스쳐인지 듣긴 했는데 잘 이해를 못했다. 뭔가 푸석푸석하고 들뜨는 머리를 좋게 표현한게 아닌가 한다. 얼마전 단발로 자르느라 아웃라인의 모발이 짧아서 조금 더 길어진 다음 다듬어야 하겠다고 했는데 아웃라인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단발이 더 어울린다고 했던 동네 미용실의 미용사와는 아무튼 의견이 다르다.
전문가 사이의 상반된 의견제시를 보며 내 환자들도 이런저런 병원을 다니면서 이런 마음일까 생각했다. 뭔지 모를 말을 들으며 누구 말이 맞을까를 저울질해보다가 어쨌든 결과가 좋은, 또는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쪽의 말을 믿고 그렇지 않은 쪽의 말은 거짓이며 미숙함의 발로라고 쉽게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의 고객들이다. 내 환자들도 그럴 것이다. 이제까지 거쳐온 병원들의 의사들을 원망하는 얘기를 듣는 것은 불편하다. 다른 병원에 가서 내 진료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겠지. 어쩔 수 없다. 헤어스타일이야 그냥 이곳 스타일이 나에게 안맞는다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병원은 그런 곳이 아니니까. 어쨌든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A가 단발이 관리가 쉬울 거라고 말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적어도 그녀의 경력과 경험에서 볼 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일 것이다. 그 진리가 나에게 적용되지 못한 것은 40년 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대체로 숏컷이 나에게 어울리더라는 말을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 내 잘못이다. 숏컷 스타일 관리의 어려움은 고데기로 대체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녀의 전문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보면 의사는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 환자들처럼 나도 머리를 한 번 보면 미용사는 적합한 스타일을 다 알아서 찾아서 권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환자를 파악하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의사처럼 미용사들에게도 그럴 지도 모른다. 사실 한번 보고 어떤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는지, 이 사람의 취향과 옷과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스타일이 무엇인지 한번에 다 아는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숏컷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던 B도 그걸 다 알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처음 숏컷을 권유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재작년 문득 숏컷을 하고 싶다고 결정하고 만난 미용사가 그였고, 그가 해준 스타일이 맘에 들어 계속 그를 찾았던 것이므로, 그가 나에게 알아서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권유해준 전문가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숏컷을 하겠다고 온 나를 말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을 뿐. 결국 최고의 전문성의 발현은 고객이 정보를 최대로 제공할 때, 그리고 그가 선호하는 바를 명확히 말해줄 때, 전문가는 고객의 선택을 존중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미용실에서도 쉽지 않으니, 병원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나는 내 환자에게 B 같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A도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도 나의 만족도는 크게 다르다. 그리 커보이지 않는 실력의 차이와 우연이 만든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전문가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B의 미덕은 참고할 필요는 있겠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귀담아듣고, 그가 원하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