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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10. 2018

'암에 대한 직접치료'

암 전문의 입장에서 본 암보험

진료를 보다보면 보험관련 진단서나 소견서를 쓸 일이 참 많습니다. 암보험을 워낙 많이들 가입하시기 때문인데요. 진단명 진단코드 넣어서 진단서 쓰는거야 뭐 크게 어렵진 않습니다. 문제는 환자가 '암에 대한 직접치료'임을 밝혀달라는 소견서를 원하는 경우, 또는 '직접치료가 아님'을 밝혀달라는 보험회사측 소견서 요청입니다. 암보험 약관은 대개 '암에 대한 직접치료'만 보장한다고 되어 있어서 주로 분쟁의 소지가 되어 왔습니다.

http://v.media.daum.net/v/20180404001005047?f=m&rcmd=rn

그러나, 환자가 받은 치료를 '암에 대한 직접치료' '간접치료' 이렇게 나눌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참으로 애매한 문제입니다.  암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한 치료는 크게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치료가 있는데, 모두 만만찮은 부작용들이 있고 회복도 오래 걸립니다. 그러면 그런 부작용에 대한 치료는 직접치료가 아닌가? 또는 암 진행으로 인한 합병증 (황달, 복수, 폐렴, 출혈 등등)에 대한 치료는 직접 치료가 아닌가? 나누기가 무척 애매합니다. 보통  수술 또는 내시경 시술 등으로 치료가 끝나는 초기 암환자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진행암, 전이암 환자에서는 암 치료 외에도 그 합병증을 조절하기 위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합병원 응급실 및 종양내과 병실에 있는 암환자들이 대부분 이런 문제로 온 분들입니다), '직접치료'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 분쟁의 소지가 있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처음 겪은 것은 수 년 전 말기암 환자가 간 전이암 진행으로 인해 황달이 생기고 이에 대해 경피적담관배액술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수개월 후 환자가 사망하고 이후 부인이 방문하셨는데, '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면서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암으로 인한 문제로 치료를 받았으므로 이것은 암에 대한 직접치료이다'라는 소견서를 써드렸습니다. 그런데 위 기사에 실린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이것은 직접치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법원(대법원 2008.4.24. 선고 2008다13777, 대법원 2013.5.24. 선고 2013다9444)은 ‘암 치료의 직접목적’ 여부는 ‘종양을 제거’하거나 ‘종양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한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항종양 약물치료를 위하여 입원하는 경우를 의미’하며, 주치료병원에서 암 치료 후 그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하거나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입원에 대해서는 암입원 보험금 지급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보통 암 치료비 부담이 크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개 '암에 대한 직접치료'에 지출하는 금액은 의외로 그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진행암 환자의 경우 암 치료비의 상당부분은 대개 증상이 악화되어 응급실에 오고, 1인실 또는 2인실로 입원하고, 합병증을 완화하기 위한 시술 또는 약물치료를 받고, 간병인을 쓰는 것에 들어갑니다. 보통 암에 걸릴 위험에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줄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작 돈이 많이 드는 부분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그 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이 가입을 권유한다면 그것은 소위 불완전 판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암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직접치료' '간접치료'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둘 다 암 치료에 빠져서는 안될 부분인 것이죠. 생존기간을 연장하거나 완치를 목표로 하는 치료 (life-prolonging or curative treatment),즉 암에 대한 직접치료 (수술, 방사선, 항암화학치료)는 증상을 조절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완화의료와 함께 제공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소위 '직접치료'가 제공된 이후 더 이상 암 진행을 막기 어려운 말기 상태에서 완화의료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완화의료가 좀더 일찍 제공되어야 환자의 삶의 질과 수명연장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암 치료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 된 완화의료에 대해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반쪽짜리 보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완화의료는 점차 암 치료에서 필수적이고 치료초기에 제공되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Parikh, NEJM 2013)

물론 보험회사에서도 고민이 많긴 할 것입니다. 치료기술의 발전과 함께 암 치료 비용도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 모든 것을 보장하면 아마 보험 자체가 유지가 되지 않겠지요. 게다가 '암에 대한 직접치료'라면서 근거가 없는 치료를 권유하는 의료기관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 환자가 보여주신 한 요양병원의 리플렛인데요. 이들 중 항암효과가 증명된 근거있는 치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혜택이 된다며 따로 표시까지 해놓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여주며 해도 되냐고 물어보실때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대개는 이런 치료를 안하면 입원을 거부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것들을 다 하지 마시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못하면 집에서 이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고, 상태가 나빠졌을 때 빨리 조치를 취하지 못하거나 영양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다면, 어떤 것이 환자를 위해서 더 이득이 될 것인가? 요양병원에서 제공하는 돌봄서비스도 일종의 완화의료인데, 이것에 대해 건강보험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니 결국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기형적인 서비스가 아닌가?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드니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하여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이런 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믿고 처방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암 실비보험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성행하였을 치료일지 의문입니다.


결국 '암에 대한 직접치료'에 대해 보장한다는 보험약관은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비를 보장받지도 못하게 만들었고, 게다가 불필요한 비급여치료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강화, 그리고 돌봄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보상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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