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 사는 용> 나의 출발선
“그게 너희 가족들이 이룬 거지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거냐?”
내가 물류센터 노동자로 일했을 때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서 들은 말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만날 때 나에게 공짜로 주어진 것들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내가 사는 동네, 부모님의 직업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나는 사실 언급만을 할 뿐 상대와 나를 비교하여 깔보는 투로 얘기하진 않지만 그저 사실 언급만으로도 사람에 따라 듣는 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인지하고 있다. 그가,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자랑이나 허세로 느끼고 위와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을 함으로써 반발심을 드러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사소한 배려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바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의 자격'을 얻기 위함이다. (사실 이게 과연 선택사항이 될 수 있는지 부터 의문이다. )
그의 물음에 대답부터 하자면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무리 365일을 온 힘을 다해 뼈 빠지게 노력해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타고난 환경이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나와 그가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 바로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물류센터 직원, 반지하 거주자, 고졸이라는 점을 밝히면 남들은 그저 사실 그대로 “아 저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살고 있구나.” 라고 받아들이거나 아무리 얕잡아 본다고 해도 가난하다거나 학력이 낮으니 만만하겠다 정도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물류센터 노동자에 반지하에서 꽤 오랜 기간 자취를 했고 학사학위가 없는 고졸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그저 '사실'로 머물지 않았다. 저학력, 저소득층, 3d 노동자의 신분이었던 나에겐 세상엔 죄다 어떻게든 여성성을 착취하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한 생물학적 남성들 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재산이 많다고 해서, 학력이 높고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여성이 가난하면, 비빌 곳이 없으면 단지 ‘취약 계층’ 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많은 남성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보면 그들이 모든 면에서 자신들 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많은 남성들이 혼자 반지하에 거주하는 여성을 보며 “아 저 여자는 보호해 줄 사람이 없으니 한번 건드려 볼까?” 바텐더로 근무하는 여성을 보며 “바텐더면 결국 술 파는 여자니까 함부로 해도 되겠네.” , 저학력 여성을 보면 “어릴 때 공부를 안 하고 원조교제라도 하고 다닌 년인 가 보네.” 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신체적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신분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의 낙인이 찍히는 게, 생각과 감정이 있는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범할 수 있는 육체로, 보고 즐기는 꽃으로,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장난감 정도로 대상화 될 때의 그 온 몸이 떨리는 모욕감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에 비하면 질투나 시기심 정도는 우습다.
최순실 만큼 돈이 많아도, 박근혜 만큼 집안이 빵빵해도, 이정희 만큼 똑똑해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상화 되는 게 현실이다. 하물며 나는 오죽하겠는가. 0에서 어떻게든 플러스인 인생을 살고 싶은 과욕이 아니라 원래 마이너스로 태어나서 어떻게든 발톱이 빠지도록 치열하게 발버둥 쳐야만 그나마 그와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기본값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마담쏘라는 페르소나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나는 아무리 부모님이 배우신 분이고 중산층이여도 그것 보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허세 또는 관심종자라는 단어로 폄하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문제로 치부하며 조롱할 수 있는, 훈수라는 걸 둘 수 있는,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애초부터 가지고 태어나 자기 자신으로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의 인생이 부럽다.
그는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덜 놀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을 거라 했다. 내가 지금이 더 좋다고 한 말을 단지 30대 여성(그러니까 그의 기준에서 혼기를 놓친 여성)의 정신승리로 치부하고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난 죽는 한이 있어도 그때로 안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