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코칭]
“정인아 미안해”라는 챌린지를 통해 아동학대를 포함한 가정 내 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 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알겠지만, 16개월이면 한참 양육자를 찾고, 안기고, 매달리고, 눈을 맞추려는 나이이기에 그 작고 보드라운 아이가 겪었을 실망감, 두려움, 고통, 공포, 절망감을 상상하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얼마 전에 줌 미팅에서 한 대학생은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과거 12살 차이가 나는 동생에게 본인이 했던 행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이 16개월쯤 되었을 때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꿀밤을 때렸는데, 당시 어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해서 작고 취약하고 천사같은 아이에게 꿀밤을 때린자신의 모습이 너무 후회가 되고 죄책감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사람 마음이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양부모에 대한 분노를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과거 아이들이 어려서 말이 잘 안 통하던 시기에 소리지르고 인상을 썼던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과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울고, 짜증내고, 드러눕고, 아무거나 만지고, 올라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가끔씩 미친 X처럼 폭발하던 적이 있는데, 그 행동이 학대였을지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말입니다.
사실 저와 같은 세대의 많은 부모들은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자랐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부모들의 교육수준이 많이 높아졌지만,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가치가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육아 팁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랑의 매보다 더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느 정도의 체벌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묵인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통계를 예를 들면, 2019년에 신고된 총 38,380건의 아동학대 중 6,506건(17%)이 부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사건사고를 보면 학대의 주인공이 양부모나 계부, 계모 같지만 실제로는 친부모 가족의 비중이 57%로 가장 많고, 친부 41%, 친모 31%, 양부 0.2%, 양모 0.1%의 비중으로 오히려 친부모가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집단 크기의 차이에 기인 가능)
아동학대의 중심에는 감정조절 실패가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아이의 발달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기대와 아이의 감정이나 의도가 아닌 보여지는 행동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성을 들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기준을 아이에게 부여하고, 아이가 부모의 높은 기대치에 맞는 행동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9살이면 이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숙제는당연히 해야지’, ‘한 두 번 말했으면 알아 들어야지’, ‘한 두 번 실수 한 것은 다시 반복하면 안되지’, ‘나는 그 나이에 안 그랬는데’,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힘들게 밥을 차려주었으면 당연히 먹어줘야지’ ‘엄마 아빠에게 말대꾸를 하면 안되지’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면 안되지’ 등 ‘~해야 한다’, ‘~하면안된다’는 기준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에 맞게 아이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실망하고 화를 냅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이 표현하는 행동의 실제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울적하고 좌절감을 느낀 아이는 마음속 깊이 부모의 관심과 공감, 위로를 받고 싶지만 행동적으로는 무례한 어투나 말대꾸, 반항적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일하느라 신체적으로 지치고,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로 머리까지 복잡해진 부모는 ‘아이마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해석하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에게서 위협을받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에 대한 동정심은 사라지는데, 부모는 아이와 똑같이 맞받아 치며 소리지르거나 해서는 안되는 말을 내뱉게 되고,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당장 조용히 해!”
“아침부터 기분을 망쳐줘서 고맙구나”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고성, 고함)!”
“한번만 더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어디서 말대꾸야!”
“조그만 게 어디서 이런 버르장머리를 배웠어!”
“나가!”
“너는 내 인생 망치려고 태어났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싹수가 노랗구나”
“넌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 모양이니?”
“계속 이러면 앞으로 게임 금지야!”
“죽을래?”
“예의 바르게 행동해!” “자리에 앉아!”
“앉아. 엄마/아빠가 말할 때는 엄마를 쳐다봐!”
“어디서 건방지게 엄마/아빠 앞에서 소리를 지르니?”
이성을 잃은 부모가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체벌을 가한 후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남아 있는 것은 죄책감, 후회, 자괴감, 미안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아 교육적인 차원에서 훈계를 했다고 아무리 합리화 해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감정을 주체 못해서 비 이성적인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것은 훈계가 아니라 폭력일 뿐입니다.
학대의 영향은 장기적이다
부모가 이성을 잃은 채 고함지르며 야단치고 벌주는 것은 아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기억력과 정확도가 떨어지며 쉽게피로해져서 우울해지고 생산성이 저하됩니다. 학대나 괴롭힘과 같은 감정적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들은 면역력 저하, 소화기 통증, 두통, 수면부족, 집중력 저하, 우울증 등의 증상을 겪고, 트라우마의 영향은 성인기까지 지속되며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심리적으로 공격을 받으면 인간은 보통 항복을 택하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한 부정적인 말, 평가를 진실이라 여겨 수용하고 자신의 생각처럼내면화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을 잘 기억하기에 부모가 화가 나서 했던 모든 말, 행동들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자기 혐오와 자기의심과 같은 상처로 남습니다.
부모에게 지지 받고 위로를 받고 싶었던 아이가 지속적으로 부모에게 거절당하고 이해 받지 못한 느낌을 받게 되면, 차츰 부모에게서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품을 떠났다는 느낌, 너무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제야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가슴을 치고 후회합니다.
감성 능력은 개발 가능하다
가정이 불행의 원천, 또는 비극의 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행히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식별하여 그 결과를 생각과 행동에 활용하는 능력”으로 정의되는 감성 능력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개발 가능하고, 아이에게 이미 각인된 마음의 상처도 회복시킬 수있는 힘이 있습니다.
필자 역시 큰 아이가 ADHD가 의심될 정도로 충동적이고 산만하고 행동이 부산스러웠기 때문에 양육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잠도 밤 12시 이전에 들지 않았고, 밥도 잘 안 먹었습니다. 학원을 보내도 다른 아이에게 깐족거리거나, 꼬집거나, 장난치거나, 때리는 일이 반복되어 두 달도 못 채우고 쫓겨나기 일수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회사에 외출을 신청하고서 아이를 마중 나가면, 반갑다고 하는 아이의 행동은 사정없이 엄마를 발로 차는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타이르고, 어르고, 칭찬해도 소용이 없어서 위협하고, 소리지르고, 때리기까지 해보았지만 아이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항하고 야단치는 패턴이 앞으로 계속 지속되면 아이도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후의 보루로 감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아이를 야단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큰아이 역시 더이상 공격적 행동이나 반항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과거 엄마를 발로 찼던 행동이나 동생을 괴롭혔던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아이의 반성 앞에서 필자 역시 과거 아이에게 했던 감정적인 말과 행동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필자의 사례가 모든 경우를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줄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감정 조절의 핵심은 경청과 질문을 통해 아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감정을 읽어주고, 어떠한 감정이든 인정하고, 충분히 공감해주며, 바람직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행동의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이가 말을 안듣는다는 생각이 들거나, 짜증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나를 위협한다’라는생각 대신,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궁금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 만으로도 분노 감정을 현저히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가장 빈번히 자행되는 아동학대나 폭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부모 대상의 감정교육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양 조건에도 부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와 같은 최소한의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감성지능의 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에 대한 교육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가정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공간이 되는데 상당히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환경변화나 기술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유연하게 사고하며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에서 자유롭게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적절히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