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van Feb 06. 2024

그 후 이야기

캐나다 초등학교 ESL 학원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큰맘 먹고 익숙한 것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 지 한 달 만에 모든 걸 다시 돌려야 한다니...

오히려 그럴 용기가 안 났고 어떤 다른 도전이 있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캐나다는 한국보다 오히려 더 학연, 지연, 지인 찬스 등

reference라고 불리는 지금까지 자기의 인맥 및 평판이 매우 중요한 나라다.

이직을 하려면 전 고용인이나 동료, 상사의 추천서, 집을 렌트하려면 전 주인의 추천서,

하물며 자격증을 따기 위한 컬리지 수업을 들으려고 해도 지인 두세 명의 추천서를 받아오란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를 제외한 지인에게 추천서를 받아 제출하거나

아니면 기밀 유지를 요구하는 곳에는 지인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등 연락처를 제출하고

언제든 연락을 해도 된다고 동의해야 한다.


말이 좋아 추천서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네가 처신을 제대로 하고 다녔는지 검사하겠다는 소리다.

어떤 누구와도 다툼이 있거나 안 좋게 끝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번 밉보이거나 사고 한번 치면 다음 단계로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내가 한 실수 하나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내 인생에 계속 태클을 건다면

정말이지 너무나도 괴로울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캐나다에 오자마자 우리는 이미 첫 학교에서 안 좋게 끝내고 나와버렸다.

이제 와서 다른 공립학교를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러 사립학교에 문의를 해보기 시작했다.

역시 그들은 왜 이전 학교에서 나왔는지 궁금해했고 거짓말을 해봐야

이전 학교에 전화를 걸어 reference check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하거나 방문해서 상담하고 심지어 교장과 학교 투어까지 하고 난 후에도

모든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은 어떠한 reference도 필요 없이 등록금만 내면 들어갈 수 있고

소수인원으로 케어가 가능한 한국의 놀이학교 같은 곳을 떠올렸다.


캐나다에 한국의 대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오면 다니는 ESL 학원이 아이들 프로그램으로도 잘 짜여있었다.

학교처럼 9시부터 3시까지 시간표에 맞춰서 움직이고

중국, 러시아, 일본,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어린이들이 조금씩 모여있었다.

체육 시간도 있어서 그 시간에는 가까운 공원 놀이터에 가서 선생님의 감독 하에 실컷 뛰어놀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원에서의 6개월이라는 시간이 매우 만족스러웠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리 아이처럼 적응 자체가 힘든 아이한테는 학교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보다

그전에 학원을 먼저 거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여느 보통 아이들은 익숙지 않은 환경에 놓였을 때

익숙지 않은 언어 외에 비언어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적응이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비언어적,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의 적응에 있어서는 언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도구일 테니

언어를 먼저 습득하는 것이 우선이라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학원을 다니면서 ESL 선생님의 연륜이 느껴지는 친절한 케어를 받았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쉽게 설명해 주고, 잘 못 말해도 잘 알아들어주고, 계속 기회를 주며 대화해 주고,

거기서 간단한 문법 같은 것도 처음으로 접해 보았고

 다행히 아이는 잘 따라왔다.

소수의 다국적 아이들과 소통하며 캐나다에서의 기본적인 사회적 인간 관계도 경험해 본 것 같다.


그 학원은 우리 집에서 편도로 40분이 걸리는 곳이었기에

아침마다 서둘러 나와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도 그 동네에서 하루 종일 비비적대다가 다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 동네의 도서관과 공원, 쇼핑몰과 푸드코트 모두 도보 가능한 반경 안에 있어서

나의 빠른 적응을 도왔다.


하지만 7, 8월 여름 방학의 학원은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한국의 아이들이 몰려 들어오면서

아이는 그 아이들이 들고 다니며 열중하는 핸드폰 게임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고,

자기는 왜 핸드폰이 없냐고 따졌으며 한국 아이들 몇몇과 또 싸우게 되는 일도 생겼다.

한국에서 적응이 힘들어 캐나다로 온 아이들에게 방학 때 ESL 학원이란 절대 안 될 일이다.










이전 03화 캐나다 부적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