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맛집 목록을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적당한 때에 적당한 사람과 맛난 음식을 먹을 때의 그 기분 좋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 제일 좋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아내가 그 기쁨을 모를뿐더러 이해해 주지도 않습니다. 되려 이런 사람 처음 봤다며 혀를 끌끌 차곤 하죠. 그나마 딸아이가 저하고 비슷한 덕분에 그 서러움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물론, 그런 딸아이도 그러다 돼지 되면 같이 안 놀 거라는 엄마의 핀잔 폭격에 고군분투 중입니다. 화이팅!!
"여보, 난 맛있는 거 먹을라고 돈 벌어." "..........."
농담으로 말했었던 거지만 생각해 보면 꽤나 진심이었습니다. 인생 뭐 있나요.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쁨을 미루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한 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어야죠. 다음 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그런데요.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구는커녕 제 아내는 배고픔을 잘 느끼지도 않는 듯합니다. 늘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 건 제 몫이고, 아내는 그럴 때마다 '이따가'를 외쳐댑니다. 그러다 보면 어디서 같이 뭘 하든 제 집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며 배고픈 만큼 예민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절 예민하게 '만든 것'임이 분명함에도 아내는 늘 배고프면 예민해진다며 저를 타박합니다. 억울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내가 간만에 가고 싶은 맛집이 있다네요. 불안한 마음 가득 안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달려가 보면 '임시휴업' 혹은 '폐업'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처음엔 우연이겠지 싶었는데 너무 자주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아내가 가고 싶은 곳을 얘기하면 '전화 확인'이 필수 절차가 되었습니다. 전에 비해 맛집을 찾아내는 아내의 능력이 점차 발전하고 있고, 그만큼 저도 배고픔을 참을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다 먹고살라고 하는 일이라잖아요.
전 그 말에 충실할 뿐이니, 배고프다고 예민해지지 말라는 말은 적당히 흘려보내며 지금처럼 즐겁게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