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나는 중학교 2학년 히키였다. 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집에 있었다. 이번에 생활기록부를 확인해 보니, 나는 그 당시에 300명 중 280등을 했다. 나머지 20명은 도대체 뭐였을까? 나는 학교에 가지도 않고 수업도 거부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밥만 먹고 조퇴를 반복하는 말 그대로 먹튀충이었다. 학교는 나에게 지식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무료 급식소였다. 밥을 삼키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버틸 이유는 없었다. 교실은 나를 삼키려 했고 나는 밥을 먹고 곧장 집으로 갔다.
그냥 그 당시에, 집에 가서 했던 행동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잤다. 나중에는 더 심해져서 잠을 자기 위해 학교를 아예 나가지 않았다. 왜 도서관이나 만화방에 가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등교 거부를 하고 싶었으면 교복 차림으로라도 그런 곳에 기웃거리는 것도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재미있는 추억을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한데, 나는 교실에는 친구가 없었으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부는 선선한 바람이 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당시는 그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집과 방과 침대. 그것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출결은 어떻게 했냐고? 그걸 조작해 주시는 교사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작하지 않다가 점점 사태가 심각해지니 교장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압력이 온 모양이다. 일단 우리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일이 있는지 묻고 그게 아프다는 뉘앙스가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그냥 병결 처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손해를 안 보고 무사히 2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깐깐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대로 유급했을 것이다. 그 당시 선생님을 싫어하면서도 그 과한 보호를 다 누리고 있었다. 그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평이 좋지 않았는데, 나를 방치하고 과잉보호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에게 특별대우를 해준다는 말도 있었다. 평판에 타격이 있었음에도 출결 조작을 하면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는거니?”
묻다가도 친구가 없다는 나의 말에 침묵으로 대꾸하던 선생님.
그 선생님이 예전에는 싫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다른 선생님보다 나를 더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마웠다. 다른 선생님들은 말로만 학교 폭력에 반대하며 내가 자살할 것을 대비해 나는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런 증거만 쌓고 나에게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말없이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난 방법은 간단했다. 엄마가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이가 힘들다며 방 안에 틀어박혔을 때는 움직이지 않던 집이, 돈의 문제 앞에서는 단번에 움직였다. 그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나를 또 다른 감옥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웃긴 것은 거기서도 은따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모난 성격과 사람에게 방어적인 태도는 전학을 가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방안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무런 경험도 하지 않은 내가 전학을 갔었기 때문일까? 나는 학교에 갑자기 가는 것에 지쳐서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가는 것이 힘들었다. 얼굴이 예쁜 애들이 전학생이라고 관심을 가지며 놀자고 했지만, 그런 애들과 노는 것은 무서웠다. 그렇게 모두를 거절하니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예전처럼 혼자였다.
나는 그때를 실패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자리에 남겨진 나는, 오히려 나 자신과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공백 속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사람도, 학교도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났다는 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나를 견디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