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험난한 학교 적응기
캐나다 학교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한 두 딸,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작은 아이는 유치원으로 입학했다.
주위에서 신학기 (9월)가 시작될 즘 학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무시한 채, 4월부터 학교를 시작하게 했는데, 왜 9월부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 좋은지 나 스스로가 깨달았다. 캐나다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많은 학생들이 전학을 하고, 한 반에 새로이 전학 온 학생들도 많아 새로운 친구 무리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딸들이 4월에 학교를 시작하다 보니, 캐나다는 어느덧 학기말 (6월에 학년이 끝남)... 친구 무리 형성이 이미 끝났고, 딸들이 친구 만들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다행히, 작은 딸은 같은 반에 한국계 여자 아이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큰 아이는 한국 아이가 3명이나 있다고 교장 선생님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지만, 남자아이 셋,,, 꼬마 남자 셋이 또래 여자 아이를 얼마나 챙길 수 있을지... 도움은커녕 큰 아이가 한국 남자아이들에 대한 두려움만 생겼다.
한국에서 딸들에게 영어 공부는 알파벳도 가르치지 않았다. 캐나다 가면 다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고, 우선 한국어가 능숙해야 한다는 나만의 신념도 있었다. 영어 실력은 영어권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는 것은 순전히 착각이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큰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친구들이 무리에도 끼어주지 않고, 급기야 학교 가지 않겠다고 옷장에 숨어 버렸다. 억지로 등교시켰지만, 부모님 따라 집에 가겠다고 난동 부리는 걸 말리는 교장 선생님 손을 뿌리치다 교장 선생님이 뺨을 맞는 일이 발생했다.
그 후 큰 아이는 등교 거부는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살짝 학교에 가보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동산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당장 집에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모습을 큰 아이가 보면 엄마 따라 집에 가겠다고 할까 봐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이런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잘 자라준 딸들에게 감사한다.
세월이 흐른 후,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에게 큰 아이가 너 왜 그때 나하고 안 놀아 주었냐?라고 물으니, 그때 큰 딸이 너무 수줍음이 많은 것 같았고, 같이 놀자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해서 그 후로 말을 안 걸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 딸이 영어를 알아 들었더라면, 금방 친구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딸들이 한국말을 잘하니 영어 공부를 전혀 안 시키고 캐나다에 온 것이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이 하는 한국말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가 보다. 언니랑 동생이 딸들을 데리고 록키로 여행을 갔는데, 같이 여행하는 미국에서 오신 의사분이 (한국인) 너희들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은 거 있으면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분에게 딸들이 영어 못하는 한국에서 놀러 온 아이들로 보였나 보다.
캐나다에 온 이유가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면, 나에게도 딸들 정서에도 좋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충고에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