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골목길을 걸어간다.
어느 집일까. 김치찌개를 하나 보다.
코끝을 간질거리는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 맛이다.
김치찌개라 하면,
돼지고기, 두부, 대파 큼직큼직 썰어 넣은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하지만 가끔은 담백하고 소박한 김치죽이
생각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밖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으로 가는 저녁 무렵,
찬 바람만 휙휙 부는데 집집마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나도 얼른 뛰어가서
밥 먹고 싶었다.
따뜻한 쌀밥을 기대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안 보이고 언니가
우리를 챙겨주었다.
당시 엄마는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셨던 것 같다.
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큰 솥에
물을 가득 부어 김치를 끓였다.
어느 정도 김치가 푹 익으면
식은 밥 한 덩이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냈다.
양을 늘리기 위한 우리 집만의
김치죽이었다.
밥알 찾기 힘들던 김치죽을 먹으며
흰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게
소원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우리 4남매는 한 그릇씩 맛있게 먹었다.
허기질 땐 그저 뭐라도
꿀맛이었다.
김치죽을 아시나요
그땐 마당에 배추를 심어 몇백 포기씩
김장하던 시절이라 겨우내
김치가 풍성했다.
나는 마당 넓은 그 집을 참 좋아했다.
기와지붕이 멋스러운 한옥이었다.
대청마루에서 뛰어놀았고,
커다란 고욤나무가 있는 뒤꼍은
우리들의 소꿉 놀이터였다.
앞마당 한쪽엔 우물이 있고
주변으로 석류나무 등 여러 꽃나무가
울타리 치고 있었다.
돼지 한 마리 키우던 돼지우리,
닭과 병아리 장, 토끼장도 있었다.
마당엔 배추와 고추, 가지, 아욱 등
각종 채소가 싱그럽게 넘실댔다.
대문 옆 아래채엔
튀밥 할아버지 부부가 살았고
우리는 튀밥(뻥튀기)을 실컷 얻어먹었다.
그렇게도 행복하던 나의 놀이터를
4학년 무렵 떠나게 됐다.
엄마의 계 실패로 억대의 빚을 떠안으면서,
월세방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부도를 막으려고 갖은 애를 쓰던 2년가량
엄마는 집안 살림을 내 팽개치다시피 했다.
중학생이던 언니가 엄마 대신
우리를 보살폈다.
김치죽은 우리 언니가 잘하는
최고의 레시피였다.
나는 김치죽 한 그릇이면
포만감이 가득하던,
그저 행복하기만 한 철부지였다.
그때 그 김치죽이 먹고 싶다.
어느 집에서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 맡다가,
그리움 한 조각
건져 올린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