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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희 Feb 22. 2022

김치죽을 아시나요!


어둑한 골목길을 걸어간다.     

어느 집일까. 김치찌개를 하나 보다.     

코끝을 간질거리는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 맛이다.     

     



김치찌개라 하면,     

돼지고기, 두부, 대파 큼직큼직 썰어 넣은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하지만 가끔은 담백하고 소박한 김치죽이     

생각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밖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으로 가는 저녁 무렵,      

찬 바람만 휙휙 부는데 집집마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나도 얼른 뛰어가서     

밥 먹고 싶었다.     

따뜻한 쌀밥을 기대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안 보이고 언니가      

우리를 챙겨주었다.     

     

당시 엄마는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셨던 것 같다.     

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큰 솥에      

물을 가득 부어 김치를 끓였다.     

어느 정도 김치가 푹 익으면     

식은 밥 한 덩이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냈다.     

     

양을 늘리기 위한 우리 집만의      

김치죽이었다.     

밥알 찾기 힘들던 김치죽을 먹으며     

흰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게      

소원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우리 4남매는 한 그릇씩 맛있게 먹었다.     

허기질 땐 그저 뭐라도      

꿀맛이었다.     

          

김치죽을 아시나요
     

그땐 마당에 배추를 심어 몇백 포기씩      

김장하던 시절이라 겨우내      

김치가 풍성했다.     

          

나는 마당 넓은 그 집을 참 좋아했다.     

기와지붕이 멋스러운 한옥이었다.      

대청마루에서 뛰어놀았고,     

 커다란 고욤나무가 있는 뒤꼍은      

우리들의 소꿉 놀이터였다.     

     

앞마당 한쪽엔 우물이 있고      

주변으로 석류나무 등 여러 꽃나무가      

울타리 치고 있었다.     

돼지 한 마리 키우던 돼지우리,      

닭과 병아리 장, 토끼장도 있었다.     

마당엔 배추와 고추, 가지, 아욱 등      

각종 채소가 싱그럽게 넘실댔다.     

     

     

대문 옆 아래채엔      

튀밥 할아버지 부부가 살았고      

우리는 튀밥(뻥튀기)을 실컷 얻어먹었다.     

     

그렇게도 행복하던 나의 놀이터를      

4학년 무렵 떠나게 됐다.     

엄마의 계 실패로 억대의 빚을 떠안으면서,      

월세방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부도를 막으려고 갖은 애를 쓰던 2년가량     

 엄마는 집안 살림을 내 팽개치다시피 했다.      

중학생이던 언니가 엄마 대신      

우리를 보살폈다.      

     

김치죽은 우리 언니가 잘하는      

최고의 레시피였다.     

나는 김치죽 한 그릇이면      

포만감이 가득하던,      

그저 행복하기만 한 철부지였다.   

  

그때 그 김치죽이 먹고 싶다.     

어느 집에서 김치찌개 끓이는      

냄새 맡다가,     

그리움 한 조각      

건져 올린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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