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방황의 재조명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에 견주어
20대 때의 방황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고 지금 나이에 물어보니 괜히 기분이 얄궂어진다. 10대까지 만들어진 세상의 틀 위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교육도 받고 대학도 진학하는데 이제 진정한 성인이 되어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삶의 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끝없는 번민이 생긴다. 번민을 하면 뭔가 깔끔한 답이라도 나와줘야 하건만 답 대신 따라오는 것이 늘 새로운 혼돈, 회의감에 또 다른 번민뿐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다룬 자서전적 소설이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부친이 한국전쟁 때 월북함에 따라 어려서부터 연좌제 하에서 형사가 주기적으로 찾아와 감시하였으며 그 와중에 시골에서 어렵게 입시공부를 해서 S대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한 채 중퇴한다. 대학에서는 엄청난 독서량을 통해 형성된 지식으로 지적인 냄새를 강렬하게 풍기며 주변의 이목을 끌었고 그러한 매력에 매료된 여대생과 지적이고 이색적인 교제를 하기도 한다. 또한 대학 도서관에서 삶의 문제에 고민하며 자신과 같이 지적으로 방황했던 두 명의 지인과의 스쳐간 만남도 있었다. 그 후 혼자 동해로 가진 돈도 없이 걸어 훼매다 하늘에서 바다로 추락하는 새를 보며 스스로 삶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놓는 것, 즉 '포기'였다.
나의 이십 대 때의 방황은 지성인이란 평을 듣는 소설가 이문열에 비하면 별 지적인 멋이나 개성도 없던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렀지만 별 한 것도 없이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군입대, 취업과 결혼 등. 인간은 누구도 현실이란 틀을 벗어나긴 어렵다. 남자와 달리 여자도 결혼을 할 경우 출산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남자가 군입대로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만큼 여자도 출산을 통해 비슷한 체험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경우도 이문열 작가처럼 20대 때 방황의 시기에 한 여성을 만났는데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나는 그 여자가 던진 그물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채 힘들어하였다. 그 여자는 자신이 기댈만한 현실적으로 버젓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나는 별로 그렇지 못했는지 처음에 "No"라고 선언을 하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더니 내가 단념하고 연락을 끊자 다시 편지를 보내 요리조리 간을 보더니 아직 불안정하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전화번호를 바꾸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 생각엔 서로 인연이 안 될 사람은 빨리 정리하는 게 맞는 것이지만 만남만큼 어려운 것이 정리라 할 수 있다. 지나칠 만큼 시간을 끌었던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그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본다.
군대 전역 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니 이제 방황 속의 20대는 저 멀리 지나가 버렸고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자녀를 키우며 먹고사는 현실적인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이 끝나 무기와 군복을 던지고는 일상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현실의 커튼을 열어 자유를 부르짖고 구름 속에 가리어진 삶의 참모습을 보려 날뛰었건만 현실이란 장막 속에서 몸을 낮추며 지나간 일은 바라만 볼뿐 어찌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앞을 보며 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마흔과 쉰도 넘어 예순을 앞둔 시점에 이십 대 때 경험했던 방황을 떠올리니 약간 겸연쩍해진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은 그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받아들인다. 이십 대 때 이상과 현실 속에서 한 번쯤 방황을 해보지 않고 현실적인 돈벌이, 고시 준비로만 젊음을 보냈다고 한다면 인생의 느지막한 때에 얄궂게 찾아올 정체모를 변종의 방황에 치유방법도 찾지 못한 채 발을 굴리며 애를 태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