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예찬

by 최봉기

예찬이란 말을 붙인 명수필이 내가 고교 1학년 때 배운 국어 교과서에 2편 실려 있었다. 하나는 '청춘예찬', 또 하나는 '신록예찬'이다. 이 두 글은 해방 전에 나온 수필로서 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명문장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나는 문장 실력은 그 정도엔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내용의 진실성만큼은 나름 자부한다. 왜냐하면 나는 20대 때 순수라는 이름의 중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양면성이 있는지 모른다. 갓난아이 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주변의 어른들에게 의존하게 되어 그야말로 어린 양이지만 혼자 걸어 다닐 때부터 남이 자기 먹을 걸 손대기만

해도 울며 난리를 친다. 그런 속성은 엄밀히 말하면 '이타적인' 것이라기보다 '이기적인'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청소년기를 지나 어느 때인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길 경우 누구나 그 대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걸 내어주고 싶어 진다. 이런 순수한 마음은 노력을 통해 생긴 거라기보다는 마치 하늘에서 선물로 준 것인 양 수정처럼 맑고 자신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타적인' 마음이다. 이땐 '이기적인' 흔적이라곤 찾아보기가 어렵다.


진실한 사랑을 확신하는 경우라면 상대방 혹은 그 집안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는 안중에 들어오지 않는다. 만일 그런 걸 차지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물을 빨아먹은 후 이내 다른 말을 하며 본성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만일 두 사람이 순수함으로 하나가 되지 않고 한쪽만 순수할 경우에도 그 관계는 조금씩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순수하다는 쪽은 상대방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지만 사람이 아닌 조건으로 흥정을 하는 쪽은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낄 경우 헤어지자고 나오거나 아니면 조건이 되는 상대를 물색하면서 양다리 혹은 문어다리 관계를 할 수도 있다. 사람 놓고 흥정을 잘하는 사람은 물질적으로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최소한 거래되는 물건이 아니고 조건은 조금씩 때에 따라서는 크게 바뀌기도 하기에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는 흥정한 것이 흥정 안 한 것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간이 좋아서 한 선택은 후회가 적지만 조건으로 한 선택은 그때마다 희비가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영악해져서 대개 손해 볼 일은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어릴 적 아줌마, 아저씨들은 사랑에 눈이 멀어 혼전에 덥석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지금 시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피임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이 경우엔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여자는 애를 낳으려는데 남자가 "누가 애를 가지라고 했어?"라고 딴 말을 한다. 미혼모는 이래서 생기는지도 모른다. 애를 키울 경우 미혼모라도 되지만 만일 애를 버릴 경우 애는 자신도 모르는 다른 가정에 입양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남녀가 순수하게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생활한다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결손가정이란 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즉 온전한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누구에게도 손 까락 질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하늘에서 내려준 순수함이란 선물로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고 살 수 있다면 비록 큰 부자가 아닐지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 떠날 때 꼭 남겨야 할 유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