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와 지금

by 최봉기

지금까지 60여 년을 살면서 했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들을 제외하고 굵직한 것들만 추려보면 머리에 남아있는 일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과거 20대 때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별 것도 아니게 보이고, 그때는 대단한 열정으로 달려들었던 것이 지금은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그때는 삶의 경험 자체가 적어 판단이나 반응이 성숙하거나 균형적이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 그때는 지금에 비해 때가 적게 묻어 순수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순수함과 열정이 남다른 20대 초중반은 특정한 일에 마음이 쏠릴 경우 한마디로 깊이 빠져 버리는데 그중에서도 이성을 만나 각별하고 애절한 감정이 생길 경우 마치 면역기능이 결핍된 갓난아이처럼 현실과의 심한 괴리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는 애석하게도 병역을 해결하지 못했거나 취업 전이라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해 여자가 설령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다고 해도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고 간혹 여자는 스스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남자와 늦기 전에 결별하려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순수한 남자라면 갑갑한 현실 속에서 고뇌만 깊어진다. 남자도 사실 군 복무나 취업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결혼 조건이 나아질 때 상대를 구하려 한다면 한결 당당하고 여유로울 수도 있건만 때 묻지 않은 마음에 어떻게든 순수했던 동기를 살려 결실을 맺어보려 하지만 결국 유행가처럼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상의 스토리는 내가 20대 초중반에 몸소 겪은 내용이다. 20대 때 가장 큰 이슈는 평생 함께 할 동반자를 찾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이상향을 찾고 그리하기 위해 노력도 하지만 어떨 때는 그런 노력 자체가 사상누각이 된다. 20대 때의 시각으로 자신이 이상향이라 생각했던 상대는 반대로 자신이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대상일 수도 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 또한 여자가 남자를 보는 눈이 있지만 간혹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다. 상대방과 가끔 한 번씩 만나 대화하는 정도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몇 마디의 말과 표정 혹은 느낌만으로 삶을 결정하려 할 때에 여러 종류의 오류가 발생한다. 상대가 이성과의 교제경험이 자기보다 많을 경우 꽤 훌륭한 연기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일정기간 한번 살아보고 나서 결혼을 결정하는 '계약결혼'이란 게 나왔는지 모른다. 이상향이다 싶다가 결과적으로 아니다 싶은 판단이 들었다면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삶 자체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누를 범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을 지금 시각으로 다시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 자신과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나 자신은 동일한 인간이지만 사고체계나 사는 스타일이 다를 뿐 아니라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순수하지도 못해 실속도 없어 보이는 일에 과거와 같이 엄청난 열정을 쏟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거리에서 손 잡고 걸어가는 청춘남녀들을 보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중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내고 끝까지 순수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쌍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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