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 먹어보지 않았거나 배달시켜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만큼 짜장면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만큼 한국인에게도 친숙하다. 중국 음식 중에는 탕수육, 깐풍기, 고추잡채를 포함해 샥스핀과 동파육 등 山海珍味가 있지만 친밀함에 있어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던 짜장면에 비할 음식은 없어 보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기에 어린 시절 부친 손을 잡고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玉生館'이란 중국집에 종종 가곤 했다. 당시 옥생관은 부산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집이었고 맛도 맛이지만 주문을 하면 매우 빨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나왔기에 늘 門前成市를 이루었다. 지금은 중국집 주인이 대개 한국인이지만 당시 옥생관을 비롯한 유명 중국집은 주인이 화교였다. 구슬을 이어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입구의 중국식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테이블이 놓여있고 카운터에 있는 주인은 주문을 하면 "3번 다이 짜제이 둘"이라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주방이 지지고 볶는 소리로 바빠진다. 옥생관의 주인은 음식점에 사람이 많아지면 한 번씩 주방에 들어가 동작이 더디다고 욕설도 하고 발길질까지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기도 하였다.
중국에 뿌리가 있는 화교들 중에서 한국에 와서 살게 된 이들은 국적을 바꾸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중국집을 하며 살았는데 중국집이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았다는 말은 익히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자신들을 찾는 고객들에게 변치 않는 맛과 정성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겉으로는 조그마한 음식점을 운영했던 짠돌이였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마음속에는 대륙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섬이고 대한민국은 반도이지만 지평선이 있는 거대한 대륙에 뿌리가 있는 그들에게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질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백발이 무성한 주인이 철가방에 우산을 들고 직접 배달나가는 모습은 대륙의 雄魂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일 내가 중국집 주인이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최고의 맛과 신속한 응대를 바탕으로 늘 대기하는 고객이 줄을 잇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주인인 나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요령 피우는 종업원이 없도록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업이 번창하면 주방의 종업원에게 분점을 하나씩 내어주며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종업원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것이다.
그 후에는 해외로까지 진출해 시장을 확장할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교민이 많은 지역에 분점을 내며 교민들에게 한국의 중국집 음식맛을 느끼게 하고 미국인에게도 현지 메뉴를 선보이며 비는 자리 없이 주문이 쇄도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는 시장에서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기업화하여 상장까지 시켜 중국집 카운트에만 머물지 않고 큰 건물의 회장실에서 중요한 경영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할 것이다.
하나의 꿈과도 같은 얘기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매진한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華僑가 아닌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 소장의 말에 의하면 한국 음식은 고유의 맛과 함께 음식으로서의 매력이 日食이나 中食에 못지않지만 문제는 상품화나 고급화가 되어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 대도시의 한국음식점은 중국 식당이나 일본 식당에 비해 영세하고 초라하다고 한다.
중국음식이 변치 않는 맛에 대륙의 혼을 담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 일본음식은 바다에서 건져온 해산물을 보기 좋게 다듬어서 입이 아닌 눈으로 먹게 했다면 감춰진 채로 오랫동안 숙성된 맛을 머금고 있는 우리의 음식은 최근 한류의 붐을 타고 전 세계로 민들레 홀씨처럼 퍼지게 해서 꽃이 만발하게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