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靈長 인간은 태생적으로 동물적인 속성이 있지만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지능과 지도력으로 인간보다 힘도 세고 날쌘 맹수들을 동물원에 가둬놓고 먹이도 주면서 구경을 한다. 하지만 이렇듯 동물을 지배하며 사는 인간이지만 자칫하면 고대사회에서처럼 인간이 인간을 가둬놓고 부려먹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아찔해진다.
동물처럼 인간은 가족을 기본으로 하며 혼자가 아닌 단체가 되어 공생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경쟁이 가속화되고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에도 '밀림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데만 血眼이 된다면 결국 '오징어게임'처럼 살벌하기만 한 게임의 세상에서 경쟁자들을 死地에 몰아넣은 최후의 승리자가 피냄새나는 돈을 쓰지도 못하고 廢人으로 전락하는 세상이 오진 않을까 두렵다.
弱肉强食의 세상이 펼쳐지지만 인간은 동물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고 배설을 하고 자식을 낳아 종족을 거느린다. 하지만 本能에 의존하는 동물은 인간과 달리배고플 때 다른 짐승을 잡아먹고도 죄책감이란 걸 전혀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本能을 뛰어넘어 사고할 뿐 아니라 짐승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良心이란 걸 가진다. 따라서 살다가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경우에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게다가 인간은 짐승과 달리 교육을 통해 능력을 키울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배운다. 인간의 도리란 윗사람을 공경하고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며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을 갖춘 인간이 나오기 위해서는 주변의 많은 관심과 지도가 필요하다. 특히 어려서 밥상에서 익히는 가정교육은 인간이 예의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공장소에서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크게 떠들거나 핸드폰을 들고 장시간 통화하면서 전혀 미안함을 가지지 못하는 태도는 밥상교육의 부족 때문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高試를 통해 혹은 박사학위라도 받아 사회지도층이 될 경우 자기 잇속만 채우며 자신은 물론 사회까지 망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거 전통사회는 여유롭지 못하고 현재보다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한 존중과 나눔의 美德이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삶의 질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예의범절과 더불어 희생봉사 정신으로 대변되는 공동체의식은 유행이나 성형수술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게 현실은 아닌지 의아해진다. 예의범절 얘기를 꺼내면 간혹 꼰대란 말을 듣기도 한다. 능력만 있으면 경제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다 보니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성에 따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이 소수의 가진 자들의 놀이터가 되고 돈 없고 힘없는 다수는 들러리로 전락할까 두렵기만 하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면 최소한 인간의 체취나 향기가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인간적인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과연 무엇일까? 사회의 발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저간에는 溫情이란 게 있어야 하기에 메말라가는 대지에 누군가가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너와 나를 포함한 모두이다. 그 이유는 자칫하면 세상이 아프리카 밀림의 사파리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의 누군가가 사업에 실패하여 심지어 自殺을 하는데도 "내 일이 아니니 나 몰라라"하며 고급 외제차를 몰고 골프를 즐기고 유명브랜드 옷을 입으며 自我陶醉에 푹 빠진다면 정신병 초기진단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남의 기쁨도 나의 기쁨이 되고 남의 불행까지 최소한 나의 불행으로 느껴지는 세상이 아니라면 과연 인간이 사는 세상이 사파리와 어찌 다르다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