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먼지 Feb 04. 2024

[본격강아지에세이] 견생2회차:복구는 어쩔시바:D

Ep.02 : 내 잘못



며칠이 지났을까.

내가 좋아하는 노란 개나리가 초록색 이파리로 바뀌었다. 여전히 우리 주인은 날 보러 오지 않지만, 난 오늘도  물을 열심히 먹으면서 주인을 기다리는 중.

사료는 맛이 없어. 우리 주인이 준 사료랑 같은 거지만 어쩐지 맛이 없어..

주인이 바라봐줄 때 나는 사료를 정말 열심히 먹었다구.

그러니 주인 오라고 해. 주인 오라고.....


"얘 어디 아픈 거 아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긴 머리 여자는 남자에게 계속 말을 한다.

"벌써 일주일이 돼가는데도 자기 집처럼 안있어. 계속 벽에 머리 처박고. 사료도 거의 안먹어. 물에 불려주면 그때 몇 입먹고."

"병원에선 이상없다고 하는데...입이 짧은가.?"

"이따 마트 갔다오자."

여자와 남자는 내 얼굴을 보고 울 것 같이 한참을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날 보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갔다.


이제 좀 살겠네. 뭘 저렇게 심각해??

인간들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애.

우리 시바견생은 쿨하게 사는 게 유일한 목표인데,

나는 주인을 찾으면 바로. 쿨하게. 안겨서 주인 냄새를 실컷 맡을거야. 그리고 여길 나갈거야.

그러니 잠이 오면 안돼. 자는 사이에 주인이 날 찾으러 오면 어떡해.잠들지마, 잠들지ㅁ........zzzzz


"띠띠리리릿."


벌떡. 눈이 떠진 나는 다시금 털이 쭈삣 선다.

심장이 요동치고 막 몸이 둥실두둥실 날아갈 것 같아.

누가 오나봐. 주인일거야.

나를 너무 오래 못봐서 지금 날 보고 펑펑 울면서 둥이야!!할거라고.

거봐 주인은 나를 찾아헤매느라 오래 걸린거라니까.

어서 이 부담스러운 두 인간에게서 나 좀 데려가!!


그렇게 주인 집의 그것과 비슷했던 현관문이 열리고,

바람도 흩어지는 공기냄새처럼 산산조각이 나 달아나 버렸다.


"복구!!아빠왔다!"

"......."

"뭐야 쟤 또 벽보고 있어..왜 자꾸 머리박고있어.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밥도 잘 안먹고 아 짠해죽겄네."

주인이 아니다.

아까 그 두 사람. 양손에 뭐가 가득이네. 근데 왜 우리 주인 안데리고 와...?

나는 주인이랑 같이 산책을 하던 둥이야. 복구가 아니라고.


뭔가 잘못됐어.

주인이 어디 아픈걸까.

이사를 멀리 갔나.

나 훈련에 맡겨진걸까?

말을 하도 안 듣고 주인 집 현관에 쉬야를 해서?

아니면 운동화를 자꾸 물어다놔서??

내가 그때 타일에 주인 운동화에 쉬야를 해서 그랬을까.

사료를 너무 많이 먹은걸까.

물을 많이 마시고 쉬야를 너무 했나보다.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 덜 짖고, 덜 먹고, 덜 쌀걸.

산책나가자고 신발 물지말걸.

목마르다고 물그릇앞에 있지 말걸.

주인한테 엉덩이붙이고 앉아있지 말걸.

주인을 귀찮게 하지말걸.

그랬다면 우리 주인이 날 이렇게 벌주지 않았을텐데.


얼마나 지났을까.

벽을 보고 웅크린 채 잠든 나에게

여자가 가져다준 이불은 도톰하고 푹신하다.

방은 낯설지만 온도도 주인이 날 혼자 둔 방보다 따뜻하고.

모든 게 주인과 살던 집보다 더 따스한데,

나만 혼자,

밤이. 너무 춥다.


모든 게

내 잘못 같다.





작가의 이전글 전쟁이고 나발이고 오늘에 집중하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