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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파파 Oct 24. 2021

가을에는 칼국수 어때요

필자의 아버지는 칼국수를 참 좋아하셨다. 주말에  회사에서 일찍 오시는 날에는 손수 밀가루 반죽을 하시고, 다른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칼국수 기계를 식탁에 고정하고 반죽을 입구에 넣고 핸들을 돌려서 한 번, 두 번 압출하고 나면 적당한 두께의 칼국수 반죽이 주욱 길게 나온다. 밀가루를 휘익 뿌려서 반죽이 서로 안 붙게 하고 두 겹 세 겹 접어서 칼로 썰어내고 밀가루를 뿌려두면 우선 면은 준비된다.


큰 멸치의 똥따기도 온 가족의 일이 된다. 멸치 육수에 양파와 호박을 넣어 푹 끓인 후에 드디어 칼국수 면이 투하되고, 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매운 청양고추를 썰어 섞어 놓은 특제 양념장을 곁들이면 그날 점심은 맛있는 칼국수 파티가 벌어진다.




갑자기 추워진 가을 날씨의 시간을 지나고 있으니 그 옛날 자주 먹던 손칼국수가 생각났다.  집 근처 상가시장에 가면 칼국수 잘하는 집이 있다. 토요일 낮에 마침 아이 엄마와 아이가 따로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해서 혼자 덩그러니 있다가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집에서 15 분 걸어가니, 분당 수내동 돌고래 지하 상가 안에 자리한 칼국수집이 나타난다.

메뉴는 단촐하다.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칼제비라고도 부르는 '섞어서'버전 딱 3가지만 있었다.


단촐한 메뉴만큼 이곳은 칼국수가 유명하고 외지인보다는 동네 주민들이 단골인 집이다. 이 가게에 오랜만에 방문한 필자는 동네주민들만 알고 있는 묵시적인 룰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서야 따라할 수 있었다.


먼저 주문하려면 카운터에 가서 메뉴선택과 동시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주문이 들어가지 않으니 한참을 기다릴 밖에.  그리고 물과 김치도 스스로 가져와야 했다.  동네 주민들은 다 아는 것을 같은 동네에 사는 본인은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허연 연기와 함께 칼국수가 나왔다.

구운 김 고명과 함께 깊은 맛을 내는 맑은 육수 안에는 호박과 감자가 잘 익어 있었다. 얼큰한 칼국수는 따로 메뉴에 없기 때문에 본인 취향에 맞춰서 먹을 수 있는 매운 양념장도 함께 있었다.


얼큰함을 즐기는 필자는 양념장을 스푼에 가득 담아 두 번 넣고 휘익 섞어주었다. 손칼국수 면발은 그 길이가 서로 다르게 얼기설기 섞여 있었다. 뜨겁고 잘 익은 면과 얼큰한 맛의 국물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얼굴에 땀이 맺히고 콧물이 주책없이 흐른다.


뜨거운 국물이 추워진 가을 날씨에 움추려든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요즘 '가을'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고 할 정도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보이고 있다. 점점 감염자 수가 줄어든다고는 하나 코로나19로 인한 부자유한 일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런 날씨와 기분을 따뜻하게 전환해 줄 음식으로 칼국수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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