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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Jul 19. 2024

'워킹맘'이라는 직업_희경

35세 국내사보험사 계약관리부 정희경 인터뷰(2024년 4월)

희경은 세 자매 중 둘째다. 위, 아래로 각각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이 있다. 아버지의 노동과 어머니의 돌봄으로 세 자매는 모두 대학을 나왔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권유대로 언니는 간호사로, 동생은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반면 희경은 반대를 무릅쓰고 언론학과에 소신 지원했고,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공부해 금융계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세 자매는 차례로 사회에 발을 디뎠다.


결혼도 순서대로 치렀다. 언니와 차이가 좀 나긴 했지만, 희경이 결혼식 날짜를 잡기 무섭게 막내도 기다렸다는 듯 뒤를 따랐다. 결혼 후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30년 넘도록 그랬듯이, 영민하고 우애 좋은 세 자매는 무탈하고 반듯하게, 그리고 비슷하게 삶을 일궈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삶의 갈래가 나뉜 건 출산 후였다. 언니와 동생은 육아를 위해 커리어를 중단하고 전업주부의 길에 들어섰고, ‘워킹맘’이 된 건 희경뿐이다.            



   


일에는 정답이 없다


어느덧 회사생활 12년차인 희경은 보험회사에서 국세청이나 대법원, 시‧군‧구청 등 기관의 요청에 따라 보험 환급금 조회 및 계약의 압류나 추심을 거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휴직 후 복귀하여 해당 업무를 맡은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기관을 상대로 하기에 정해진 절차대로만 일을 진행하면 수월하겠거니 싶지만, 수시로 개정되는 관련 법령과 세칙을 꼼꼼히 알아야 하고 추가적인 법 해석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내 변호사를 통해 법률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 일을 맡기 전까지 “세상에 이렇게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며 10년 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을 알아가는 중이다.


사실 희경은 10년 정도 다른 업무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휴직 전까지 영업지원 파트에서 근무하며 영업 채널별 실적을 집계하여 통계 자료를 만드는 업무를 했다. 수업시간에 노트필기를 깔-끔하게 하던 학생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엑셀로 잘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언론을 전공하며 세상만사에 대해 자기만의 시각을 벼리는 훈련을 한 덕분인지 보수적인 분위기의 금융 회사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A대로 하던 것을 B로 해도 상관 없고. 오히려 틀을 깨서 더 좋은 쪽으로 갈 수 있는 것도 많고. 그럴 때 저는 ‘이렇게 하면 어때요’ 라고 제시하는 편이에요.”


“정답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희경은 뭐든 답습하지 않고 변화하고 나아가려 한다. 이런 태도는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업무가 잘 맞는다고 느꼈다.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보니 소속이 바뀌어 있었다. 다니던 외국계 보험사가 국내사 보험사에 인수되었고, 영업지원이 아닌 계약관리부로 발령이 났다. 어찌할 수 없는 변화이기에, 새로운 일에 잘 적응하고 전처럼 열심히 임하면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워킹맘'이라는 정체성


아쉬움이 고개를 든 건 복직 후 첫 고과를 받아 든 때였다. 인사제도가 이전 조직의 것과 다르다. 출산‧육아휴직을 가더라도 일한 당해연도의 업무 성과에 대해 빠짐없이 평가하던 외국계와 달리, 국내사는 1년 중 회사가 정한 기간 이상을 근무하지 않으면 그 해의 업무 평가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연봉과 성과급에 영향을 미쳤다.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성과주의에 대한 믿음이 흐려졌고, 고민이 시작됐다.


“사실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 될까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에 평가받고 나서 ‘열심히 해봤자…’ 약간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지금의 평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근데 사실 이 업무는 모든 금융회사에서 루틴하게 하는 업무니까 제가 이걸로 성과를 더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거예요. 그전에 있던 곳은 제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계를 내느냐에 따라서 좀 달라 보일 수 있는 건데 지금 업무는 그런 게 전혀 아닌 거니까요. … 원래는 아기 낳기 전에 저는 무조건 결혼을 해도 회사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회사에 더 다니고 싶었으니까….”      


국내사에 흡수되면서 리더급 내 여성의 비중이 확연히 줄어든 것도 고민에 한 몫했다. 리더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던 조직에서는 출산과 육아휴직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워킹맘이라고 해서 정체성이 추가되거나 변경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유리천장을 느끼지 못했다. 여성 리더 비중이 30% 수준에 그치는 지금 회사에서 워킹맘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일을 100%를 해도 100%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일과 육아를 두고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마음 속에 저울질을 하게 됐다.     


“아이가 생기니 회사가 보조 수단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긴 해요. 그래서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고요. 어쨌든 인생에서 회사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점점 기울고는 있어요.”





워킹맘의 비빌 언덕


희경은 두 집에 산다. 평일에는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주말에는 남편이 있는 신혼집에 아이와 함께 오간다. 작년에 복직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두 집 살림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올봄부터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었다.     


차로 30분 거리인 두 집을 오가는 일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 남편이 매번 금요일 밤에 친정으로 데리러 와서, 일요일 저녁에 친정에 데려다주고, 다시 금요일 밤이 되면 데리러 온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짐을 싸고 푸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정서적인 면에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아이가 조부모님과 지내며 유대감과 안정감을 쌓을 수 있지만, 반대로 아빠와의 유대가 반비례할까 우려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희경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신혼부부가 많은 신도시에 살고 있어 어린이집 대기 순서가 영 줄어들지를 않았다. 운 좋게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더라도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었다. 부모님은 언니가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동안 산후조리와 육아를 도와주셨었다. 언니의 선례 덕분에 희경도 출산 후 8개월 간 부모님댁에서 몸조리를 했다. 복직 의지가 강한 딸을 위해 부모님은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주셨다. 다행히 친정집 근처 어린이집은 대기 없이 바로 등원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머니가 아이 등원을, 희경이 퇴근길에 하원을 맡고 있다. 희경은 퇴근과 동시에 육아 출근인 셈이다. 아이 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분주하다. 두 사람의 빨랫감도 신혼집으로 가져가 해결한다. 연로하신 어머니의 손을 덜어드리려는 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희경은 ‘비빌 언덕’이 되어준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주변의 워킹맘들은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주변에 보면 친정엄마가 같이 있거나 고모가 봐주거나 거의 애를 키워준 사람들이 있어서 버텼더라고요. 그나마도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 다들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요.”     


초등학교 신입생은 생애 첫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 양육자의 세심한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전수업만 듣기 때문에 오후의 돌봄은 가정의 몫이 된다. 때문에 요즘은 육아휴직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시기에 맞춰 쓰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원팀(One Team)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남편은 어디에 있죠? 왜 함께이지 않은 거죠? 친정부모님, 특히 어머니와 희경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남편은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일요일을 빼고는 모든 날 직접 출근하고,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까지 장사를 하기에 귀가가 늦다. 생활 패턴이 다르다 보니 친정에서 함께 지내기엔 서로가 불편할 터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경은 쉴 틈 없는 일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불만이 없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것 같아요. 그냥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육아의) 100중에 90을 하고, 남편은 진짜 10밖에 안 하긴 해요. 좋은 건 남편이 관여를 안 하는 편이에요. (남편에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거나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논의를 하겠지만 나한테 믿고 맡겨라’ 약간 이런 태도로 사실 하고 있어요.”     


남편 역시 워킹맘으로 남고 싶은 희경의 의사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자영업자인 본인과 달리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직장인 아내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꼭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하고, 특히 희경의 육아 방식에 토달지 않는다. 아-주 가끔 남편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희경의 한 마디면 논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종료된다.     


“그럼 자기가 하든가 (웃음)”


희경이 육아를 ‘부부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는 태도에 내심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어찌 모든 일을 자로 잰 듯 반반으로 나눌까 싶어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아기의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시기에, 부부 중 시간과 마음에 여력이 조금 더 있는 사람이 잠시 짐을 더 나눠드는 것뿐이라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는 일이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신혼집 근처의 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때가 되면 남편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도 있을터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부부는 별 갈등없이 부모로서 가장 바쁜 생애주기를 통과하고 있다. “결국 우리 가족이 같이 잘 살려는 거니까.”라는 원팀(One Team)의 목표를 되새기며.





기억되고 싶은 나


물론 희경은 가끔씩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워킹맘으로서 살아야 할까?’ 그럼에도 결론은 똑같다. 희경은 커리어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일하는 나’로 남고 싶고, ‘일하는 엄마’로 자식에게 기억되고 싶다.     


“우리 엄마는 일을 안 하고 집에만 있다는 게 제 어린 마음에는 약간 부끄러운 적이 있었어요. 우리 엄마는 뭘 하지? 우리 엄마는 집에 있는데…. 그때만 해도 엄마가 일을 하는 애들이 별로 없긴 했잖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엄마 직업이 00이야 이러면 너무 부러웠던 것 같아요. 제가 전문직이나 이런 자랑할 만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가) ‘우리 엄마는 회사 다녀’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해요. 회사의 일원, 사회 일원이라는 느낌으로 아들이 그렇게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1990년대~2000년대까지도 주양육자인 전업주부의 노동이 평가절하되던 시기였다. 이는 어린 희경에게까지 스며들었을 테다. 물론 ‘집에만 있는’ 엄마를 부끄러워하던 어린 희경은 제 아이를 키우며 당시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엄마가 자기는 너무 바빴대요. 정말 쉴 틈 없이. 요즘 너무 이해가 돼요. 셋을 어떻게 키웠지? (웃음) 집에만 있어도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요. 우리 엄마도 학교에 데리러 오고 학원도 데려다주고 그랬던 것 같거든요.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에는 밤 10시에도 밥해주고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키워서 제가 이만큼 큰 거를 이제 알겠어요.”     


아이 셋을 기른 엄마의 바쁜 시절을 헤아리면서도 제 길을 가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릴 때 제가 엄마한테 ‘뭐 사게 돈 줘’ 이러면 엄마가 ‘아빠한테 달라고 해’이랬어요. 그게 싫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아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걸 사야 되는데 내가 그렇게 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계속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 때문에 약간 회사에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일을 해야 된다. 돈을 벌어야 된다.”               





집에 있는 게 더 어려워


희경은 대학교를 고등학교처럼 다녔다. 동아리 활동이나 대외활동은 일절 하지 않다보니 친한 친구들 외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향했다. 과제는 전날 미리 제출하고, 수업 시작 20분 전에는 강의실에 도착해 숨을 고르던 학생. 습관성 모범생인 희경에게 ‘일’이란, 공부처럼 계획대로 성실히 수행하면 이뤄지는 것, 한 만큼 인정받는 것이었다. 자존감을 확인시켜주고 높여주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제가 맡은 일이 있고, 맡은 일을 해결하고 나면 사람들이 ‘담당자 누가 처리했다’ 이런 식으로 제 존재감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반면 육아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집에만 있는’ 엄마로 지내려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제가 집에만 있을 때 (육아휴직 때) 아기는 너무 좋지만 되게 우울했거든요. 나의 발전이 없는 것 같고 내가 뭘 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은 그런 게 되게 싫었어요.     


제가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이 아니어서 울지는 않았는데 극도로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저는 (계획한 대로) 해야 되는데 사실 애기가 그렇게 따라주지 않잖아요. 그런 거에 되게 스트레스 받았어요. ‘나는 얘를 밥을 먹이고, 재우고 나면 애가 자는 동안 계획한 걸 해야 돼’ 로드맵이 머릿속에 있는데 그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어느 날은 잘 되고, 어느 날은 잘 안되고 하잖아요? 뭔가 아닌 날은 제가 그 중간중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되게 계획적이고 그걸 지켜야 되는 성격이라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출산 후 8개월까지 친정에 있는 동안) 제가 스트레스 받는 것 같으면 엄마가 중간중간에 ‘이거 꼭 안 해도 된다’ 얘기를 해주시고 엄마가 대신 봐주셨어요. (8개월이 지나고) 이제 온전히 집에 와서 (육아를) 하니까 그 몇 개월 동안 너무 우울한 거예요. 복직하기 전까지 한 4~5개월 있었나. 혼자 너무 우울했어요. 그때 최악이었어요.”     


돌아보면 복직 전에도 희경을 구해준 건 어머니였다.               





일과 육아, 밸런스 게임


희경은 일도, 육아도 다 잘하고 싶었다. 다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욕심이란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일)도 100%가 아니고 여기(육아)도 100%가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둘 다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하나를 버려야되는 건가’ 이 생각이 들 때가 있긴 해요. 근데 어쨌든 저는 집에만 있으면 우울할 것 같아서 그냥 요즘의 목표는 100%, 100%가 안 되더라도 기준을 낮춰서 70~80%만이라도 내가 양쪽을 다 해낼 수 있게끔 하자. 이 주의로 다니고 있어요.”     


아무리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과부하가 걸릴 법도 했다. 아이 낳기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바깥에 나가서 얘기를 하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워킹맘으로서 공감대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으련만 육아를 감당하기 위해 점점 회사를 떠나는 여성들이 늘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진짜 혼자 가만히 있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기도 해요. 아기 자고 나면 아무리 졸려도 그냥 나만의 시간을 꼭 갖고 자는 것 같아요. 그걸 조금만이라도 하고 자면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희경은 아기가 잠들고 나면 언론사별 뉴스를 찾아본다. 유아 채널을 틀어놓느라 못 본 방송사별 8시, 9시 뉴스를 찾아본다.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정도만 해도 다 풀리는 것 같단다.     


“좋은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이것을 꼭 먹여야 한다, 이런 거 안 해요. (웃음)”


주변에 육아 동지가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의외로 맘카페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편이다. 시기에 맞게 필요한 정보만 적당히 알아보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 갈팡질팡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 “내 선택이 맞겠거니” 마인드 컨트롤하는 편이다.     


“사회생활도 육아도 정답이 없더라.”     


이게 희경이 내린 결론이다.          






희경은 하얗고 가녀린 외모에 성격마저 조심성이 많고 유순해서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이 꼭 맞는 사람같았다. 취직을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가꾸는데 집중할 것만 같은. 아니 그보다 무릇 사회란 야생과 같아서, 그런 환경은 희경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 생각이, 인터뷰를 하며 통째로 깨졌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놀랐고, 어쩐지 통쾌했다.

누구보다 오래 회사생활을 할 것 같던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 회사생활을 길게 안 할 것 같던 희경은 정년을 다짐하며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쭉 내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주길 바라며 희경의 꿈을 붙인다. 희경이 정년퇴직할 즈음엔 워킹맘이 지금처럼 고되지 않고 흔해져서 ‘일하는 엄마’를 특정하는 워킹맘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꿈을 잊고 산 지 진짜 오래된 것 같은데. 진짜 하루하루가 꿈같이 지나가고 있어요. 뭐가 더 있겠어요.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뭐 원대하게 뭘 다시 해낼 수 있는 여건은 이제는 지난 것 같고. 지금 하는 것들(일과 육아)을 최선을 다해서 둘 다 성공적으로 만드는 거죠. (양손을 각각 손짓하며) ‘여기서도 잘했다. 여기서도 잘했다’ 듣는 게 목표예요. ‘이럴 거면 그만둬라’는 말 안 듣고. (웃음)     


사실 진짜 멋진 워킹맘이 되고 싶어요. 요즘의 계획은 그거예요. 계속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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