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더블유비 여성의류 쇼핑몰 대표 최선우 인터뷰 (2024년 1월)
학교 수업을 마치면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방문을 닫고 요리조리 살펴가며 좋아하는 캐릭터 이미지를 찾아모은다. 포토샵으로 이리 저리 매만져 하나의 스티커 도안으로 만들고는 출력업체에 제작 주문을 넣는다. 곱게 출력되어 손 안에 넣은 스티커들을 사진 찍어 다꾸 카페(다이어리 꾸미기 모임 카페)에 올린다.
< 게시글 제목 : 인기 캐릭터 스티커 장당 1,000원. 우편으로 보내드려요 >
댓글이나 쪽지로 주문이 들어오면 편지 봉투에 예쁘게 담아 실링을 하고, 재차 확인해가며 '받는 사람' 란에 주소를 옮겨적는다. 포장까지 완성하고 나면 우체국으로 달려가 우표를 붙여 보내는 것으로 비로소 마무리된다.
이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본 선우의 은밀한 취미생활의 한 장면이다. 누가 시키거나 알려주지 않았건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만들고, 나누고, 수익화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녀는 중학생이었다. 스티커뿐만 아니라 강아지용 리본을 만들어 강사모(강아지 동호인 카페)에 판매했다고 하는 걸 보면, 떡잎부터 달랐다고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선우는 현재 20대 여성들을 타겟으로 하는 의류 쇼핑몰 ‘더블유비(w-bee)’의 대표이다. 절친한 친구인 전보경 대표와 함께 2020년 4월 쇼핑몰을 열어 운영한 지 올해로 5년차에 접어들었다. 두 사람은 상품 발주, 코디, 배송, CS, 상품 상세페이지 제작 및 업로드 등 모-든 업무를 직접하고 있다. 추가로 선우는 더블유비의 모델이기도 하다. 2인 운영 체제인 덕분에 파트너는 자연스레 촬영작가를 겸한다.
선우는 어릴 적에 길거리 캐스팅을 몇차례 당하기도 했다. 덕분에 점차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인기 연예인의 이름으로 종종 불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수줍어하곤 했던 그가 쇼핑몰을 열었다며 소식을 전했을 땐, '어울려! 잘 할거야!' 라며 지인들의 응원이 넘쳐흘렀다.
“어렸을 땐 사진 찍히는 게 막연한 꿈이었어요. (이렇게 모델로 일하니) 너무 재밌고요. 지금은 사진 찍잖아요? 그러면 결과물 보자마자 ‘천직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니까요.(웃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 사진 : 더블유비 제공. w-bee 홈페이지(자사몰) : w-bee.co.kr / 더블유비 인스타그램 (@wbe_e)
모델을 겸하며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찍히는 게 좋아서만은 아니다.
제가 입고 싶은 옷, 저한테 잘 어울리는 옷으로 코디를 짜고 팔아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사는 사람들이 진짜 많거든요. 그러면 진짜 엄-청 뿌듯해요. 옛날에는 잘 팔릴 만한 걸 파니까 그렇지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진짜 이쁘구나. 이게 먹히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업 초기에는 박리다매 식으로 규모를 키웠다. 첫 달 매출이 6천만 원에 육박했다. 더블유비 자사몰, 스마트스토어, 지그재그, 브랜디, 에이블리 총 5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첫 해만 해도 에이블리에서의 매출이 전체의 80~90%를 차지했다. 에이블리는 저가 브랜드가 강세인 플랫폼이다.
“에이블리 스타일로 딱 옷만 사진 찍어서 파는데, 그렇게 하면 촬영하러 밖에 안 나가도 되고 시간이 엄청 절약되잖아요. 하루에 상품을 수십 개도 찍어서 올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많이 팔았어요.”
사무실 안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촬영을 했다. 등록하는 상품 수만큼 주문량은 갈수록 늘어가고 매출도 안정적으로 상승했다. 시작한 지 1년 만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 즈음.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엄청 많이 팔았는데 슬럼프가 온 거예요. 재미가 없는 거예요. ‘나 이 옷이 너무 예뻐서 팔고 싶어’ 이런 마음으로 상품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잘 나갈 것 같은데 팔아볼까?’ 하고 가져오다 보니까 촬영할 때도 재미가 없고 기계처럼 일을 하게 된거죠. ”
개인적으로 오픈 당시에도 쇼핑몰을 봐왔기에, 모델 선우가 걸친 옷들이 전부 매력적으로 보였다. (물론 20대 타겟이다보니 내가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는 옷들도 간혹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옷이 ‘선우효과’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불티나게 팔리던 옷들도 대표의 취향에 딱 떨어지는 옷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순히 매출이 오른다고 재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야 재미가 생기는 ‘스타일에 대한 자아가 확실한’ 사장님이었다. 고민 끝에 파트너와 상의하기에 이르렀고, 다행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사업전략 방향을 틀었다.
“‘내가 입고 싶은 것’만 갖고 코디를 싹 해서 밖에서 촬영해요. 코디도 짜야되고, 추운데 밖에서 촬영도 해야 되고. 그래서 지금이 더 힘들긴 해요(웃음). ”
에이블리 스타일이 아닌, 더블유비 스타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모델 얼굴을 공개해 상품 이미지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가격대가 높아지더라도 퀄리티가 좋은 상품들을 판매하기로 했다. 주문건수는 줄었지만 매출은 유지가 되었다. 에이블리라는 주력 채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사 경쟁력이 높아졌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줄만 알았다.
2022년 11월 결혼을 앞두고 잠시 일이 손을 벗어난 시기가 있었다. 일주일에 2~3회 새 상품 업로드하던 것을 1회로 줄이는 식이었다.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11월부터 거의 6개월 동안 적자였어요. 그래서 그때 엄청 힘들었어요. (매출이) 한 번 꺾이니까 다시 올라오지 않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보면 당겨서 파는 거잖아요. 물건을 사와서 판매하고 정산은 나중에 받고, 또 사와서 팔고 정산을 받는건데. 이게 (매출이) 없으니까 돈이 안 도는 거예요. 보경이 없었으면 당장 그만뒀을 거예요.”
너무 힘든 나머지 에이블리에 주력하던 초기 스타일로 돌아갈까도 고민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쇼핑몰을 인수하겠다는 이마저 나타나자,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다.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했지만 별 수 없이 매일 야근했다. 계속 일만 했다. 정말 ‘딱 두 달만 고생해보자’ 했던 것이 5개월 가까이 늘어나서야 안정권에 도달했다. 두 사람이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에 쇼핑몰 한다고 하면 말려주세요.(웃음) 정말 힘들어요. 적자일 때는 퇴근하고 나서 촬영지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시중에 도는 말처럼, 내 사업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 삶에 워라밸, 그런 거 없어요. 밤 1시에 퇴근한 적도 많고, 주말에 일할 때도 있고요. … 힘들 때 ‘(사업을) 왜 했지? 그냥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고 따뜻한 데 앉아서 일이나 할걸’ 이런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거든요. 근데 언젠가는 했을 것 같아요. 나이가 먹어서라도 의류가 아니어도 언젠가 사업은 해봤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경험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덧붙였다.
“근데 그 정도로 내 일을 해보고 싶고 너무 좋으면 하루 빨리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저도 26살에 회사 그만두고 시작했는데 ‘더 빨리할 걸 그랬지’ 이런 후회도 해요. 더 어리고 체력도 좋을 거고 빨리 했으면 더 커져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 말은 곧 이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이제는 누가 쇼핑몰 사겠다고 하면요? 절대 안 팔거예요. 절대 안돼요.(웃음) …
이제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사는 것 같아요. 이전엔 첫 구매 고객이 많았거든요. 이제는 재구매 고객이 엄청 많아요. 아예 저희 쇼핑몰에서만 구매를 하는거죠. … 정말 재밌는 건 ‘네일아트 어디서 받았는지, 무슨 색깔인지, 개인 소장인 운동화까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거든요. 안 파는 것들까지요.”
이런 현상을 보며 파트너는 ‘쇼핑몰은 옷을 파는 게 아니라 모델을 파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입고 바르고 신고 있는 것들을 갖고 싶어한다는 게 선우는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일할 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 선우가 ‘재밌다’라고 연신 말하는 걸 보면 ‘재미’가 곧 ‘사랑’인 것 같기도 하다.
중학생 선우는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당시 대통령은 마이스터고를 도입하며 고졸 청년 취업 정책을 밀어붙였고, 취업 후에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 사례를 보며 선우도 언제라도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했다. 경기도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정규직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8년차가 되던 2020년 3월, 입사 동기였던 보경과 선우는 손을 잡고 동시에 미련없이 회사를 떠났다.
마지막 직급이었던 ‘주임’에서 더블유비의 ‘주인’이 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8년을 한 회사에 몸 담고 있었으니 좀 더 쉬고 싶을 만도 한데, 딱 일주일 쉬고 일을 시작했다. 전 직장에 더 남아있었더라도 언제고 주인이 되어있을 사람들이다. 알고 보니 파트너도 학생 시절에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범상치 않은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하고 싶은 걸 하고야 마는 푸르고 단단한 떡잎이었다.
선우는 앞으로 인스타그램을 활성화하는데 주력하려 한다. 사업을 할수록 SNS의 효과를 실감하게 되었고, 타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고 자사몰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더블유비가 더 알려져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발행일 기준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수는 1.3만에 이른다. 유튜브 채널 운영도 고려 중이다. (마음 먹으면 하고야 마는 사장님들이라 곧 이뤄질 것 같만 같다.) 언젠가는 사세를 넓혀 좋아하는 친구들을 영입해 함께 일하는 것이 두 공동대표의 큰 그림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이것도 꼭 적어주세요! 패션 특성상 반계절을 앞서가야 하다 보니, 겨울에 봄옷 입고 찍고, 봄에 여름옷 입고 찍어야 하는 게 생각보다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가 추위에 약하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여름에는 가을옷 입고 인중에 맺힌 땀 닦으며 찍고요. (웃음)”
힘든 내색할 줄 모르던 주임님은 사장님이 되어서야 힘들다고 토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인지, 타고난 성격 덕분인지 좀체 불평불만이 없는 동료였기에 이런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내 사람’과 일하게 되자 비로소 속내를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힘든 점을 불쑥 내뱉는 젊은 사장님이 이제야 좀 제 또래같아 보여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40대가 되면 사람들이 저를 봐줄까요?" 라며 모델로서 한계를 얘기하던 선우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나이들면 나이든 대로 다른 모델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있을 선우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당연했다. 선우가 꿈꿔온 일들을 해낸 건 '어려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였으니까. 보경과 마음 맞춰가며 40세고 50세고 '하고 싶은대로' 해내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