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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거시기 (14)

처음 접시/최문자

by 최병석

결혼하고 석달쯤 지나서

우리는

처음접시를 깨뜨리고

처음으로

캄캄함을 생각했다

두 가지 이상의 무거운 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사랑은 빵과 다른 중력


식탁 위에서

팔을 힘껏 뻗어도 팔이 닿지 않던 가난

접시에 담긴 빵들이 무거워서

나는

그 단단한 곳

낯 선 마루 위에

여러 번 접시를 떨어뜨렸다


손가락을 베고

문을 열고 나와

들판 나무처럼 서 있었다


깨진 접시에서 꺼낸 말들

빵 안에 없었던 사랑의 문장


깨진 접시에도

빵의 손이 달려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노트에다 내 것이 아닌 빵의 이야기를 썼다


-<시와 시학>2019년 겨울호


♡시를 들여다 보다가


신혼초가 떠 오르는 시작이다.소꿉놀이에서 본격적인 살림이 시작되려는 찰나인데 단지 석달만에 그 기대가 깨지고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끼고야 말았다는...왤케 다들 시작이 힘들었을까? 아닌가? 어려웠던 사람들은 따로 있었던걸까?


빵의 무게를 느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시인의 입장이 되어서 깨진 접시에 손도 베어보고 방문을 열고 나와서 우두커니 서 보기도 한다.식탁위에서 팔을 있는 힘껏 뻗어도

닿지 않았던 가난이라는 굴레가 환갑을 갓 넘기고 나니 새삼

다가온다.삼시세끼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 없으니 이제 빵의 무게보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고 있다.부드러운 크림이없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꼬맹이는 많이 모자랐던 어려움이 낯설기만 하겠지.잡힐듯 잡힐듯 까마득하기만 했던 여유로운삶이 코 앞에 당도할 즈음인데 이제 곧 정해진 곳으로 갈 준비로 주변을 돌아보는 싯점.


빡빡하기만 했던 삶속에서도 서로를 돌아보고 배려해주는 사랑을 찾아냈었더라면 그닥 힘이 들지는 않았을 터.

가난하다고 풍성한 사랑마저도 그 굴레속에 묻어 놓고 핑계를 대며 힘들어했던 시절을 미안해합니다.


"여보,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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