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3.
네덜란드의 88년생 역사학자 브레흐만이 말하는 기본소득 테드 강의를 시청하였다.
빈곤은 돈이 없는 것이다.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빈곤한 사람을 개조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시도는 수영 세 시간 가르쳐서 망망대해 데려다놓고 살아남으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빈곤의 해결책은 돈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은 많이 있었고 결과는 성공적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매달 공짜돈 기본소득을 주면 그들은 일을 안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당신은 그럴 것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본소득을 받더라도 일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본소득을 위해 너무 거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국방예산의 1/4 정도면 가능한 시기가 있었다. 현시대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부유하다. 기본소득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상이 브레흐만 강의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한번 보고 싶다. 권리로서의 복지, 충분한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편적 복지의 최종결과, 어쩌면 유토피아의 모습 아닐까? 민주주의, 노예해방, 남녀평등의 예를 들며 유토피아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브레흐만의 주장이 준 충격은 여운이 크다. 그동안 유토피아를 어원대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단지 시간만 늘려 놓으면 유토피아도 현실이다.
기초수급권에서 부양의무제 적용대상이 단계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는 교육급여에 이어 주거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간 후에 많은 사람이 근로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새로운 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가족 간 부양의무제로 감당할 수 있을까?
부양의무제 폐지, 기본소득 제공은 커다란 사회변화의 흐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사회는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 제도의 벽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더딘 변화겠지만, 제도의 변화는 항상 우리 옆에서 우리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6년 입사당시 철옹성처럼 느껴졌던 부양의무제는 2020년 현재 교육급여, 주거급여를 넘어 의료급여, 생계급여에서의 해제도 논의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먼 일처럼 느껴지는 변화가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시간동안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사회복지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시대의 변화에 앞서서,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옆에서 함께 준비되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