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를 보지 못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네.
나는 결혼도 하고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어.
세상에 말이야, 아들을 다 낳았지 뭐야.
아빠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던 아들.
내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을만큼,
늦둥이까지 낳아 얻고픈 아들.
아빠, 아들은 너무 귀여워.
그런데 낳아보니 딸이 더 좋을때도 많아.
요즘 세상은 꼭 아들이 아니어도 된대.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없어지고 있어서 그런가.
나는 아들이 더 특별한지는 모르겠고 둘 다 좋아.
아빠가 첫째와 둘째를 만났다면
얼마나 예뻐했을지 상상을하니 가끔 웃음이 나기도 해.
벙글 벙글 웃으며 안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을거야.
35년 전 아빠는......
귀찮다는 말도 없이 늦둥이인 나를 데리고
전국 방방 곡곡을 돌아다녔으니
우리 첫째, 둘째를 차에 태우고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었을 것 같기도 해.
아빠, 나는 어린 시절 아빠의 작은 차를 타고서 다녔던
높은 산들과 바다 그리고 계곡이 뚜렷이 기억이 나.
그곳에서 무뚝뚝한 아빠와
별 말 하지 않고
신선처럼 누워서
하늘과 나무를 감은 눈으로 쳐다보았고
흐르는 물소리 자장가삼아 꿀같은 잠을 자기도 했지.
아빠가 배낭에 넣고 다녔던 도구로 과일도 까먹고
싸가지고 갔던 도시락도 먹었는데....
그 맛이 아직 남아 입에서 맴도는 것 같아.
울진 앞바다에서 아빠가 잡아온 조개를 삶아서
작은 불빛 아래 우리 둘이 배시시 웃으며 까먹었던 것.
텐트 안에서 추울까 걱정되어서
담요를 두 겹 세겹 덮어주었던 아빠 손길,
핸들을 잘못 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것만 같은 산길을
겨우겨우 운전해서 올라갔던 일,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우리 둘이 등산을 하고
산 아래 식당에서 커다란 토종닭 백숙을 주문해서 먹다가
양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는 엄마가 꼭 와야겠다고 하며 웃었던 일.
짧은 여행 길에 먹었던 오일장 국밥에서
간과 천엽을 발견하고 호들갑 떠는 나를 보고
그릇에서 말없이 내장들을 건져주고
손수 밥을 말아주던 아빠 손이 기억나.
아빠가 자주 입었던 회사 로고가 박힌 점퍼.
그 점퍼를 입었던 아빠 품에 안겨보고 싶어.
그 시절의 아빠는 젊고 건강하고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 아프다가 못만나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그시절에 더 많이 안겨볼 걸 그랬어.
나는 내가 아이를 낳고 내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빠 품이 그립지 않을 줄 알았어.
어른 중에서도 철이 든 어른이 된 거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아빠..... 나는 내내 아빠가 그립고 그리워.
아빠가 만들어준 내 어린시절 그림같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어.
그리고 그때의 소중한 추억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나는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렇게 소중한 기억이 될 줄 몰랐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줄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그래서 지금 그런 말을 전해 주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
아빠, 아빠는 잘 지내고 있어?
문득 문득 아빠에게 했던 나쁜 말들이
그리고 행동들이 생각이나서 괴로울때가 있어.
아빠, 미안해. 죄송해요.
아프지 말고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소원은 아빠가 다시 태어나도
아프지말고 사고도 당하지 말고
아빠만큼 착한 사람들속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거야.
아빠에게
내가 낳은 아들, 딸을 보여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그리고 다시 만나면 정말 감사했다고.
이만큼 키워주어서 감사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
힘든 시절에 딸 셋을 키우고
힘든 회사 생활을 하고
누구보다 성실했던 아빠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있어.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을 주어서 감사해요.
나는 나는......
아빠한테 내가 받은 사랑
다시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나중에 아빠 만나게 되면
아빠 덕분에 잘 커서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좋은 일 하면서 인생 잘 살았다 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할게.
아빠,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가슴부터 아파오는 아빠.
얼굴을 부비고 안겨보고픈 아빠.
아빠. 보고싶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