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힘, 말보다 더 큰 선물

[연재 7] 마음을 내어주고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

by 이월규

은퇴 후,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이다.

바쁘게 달려오던 삶에서 한 발 물러서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끔은 멈춰 서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해 정작 나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때도 많다.


긴 수명의 시대,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어떤 삶으로 지난 시간보다 미래의 시간을 풍요롭게 살 것인가?


다시 살아가는 인생은 젊은 날의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평생 학습을 통해 나답게 살아가는 여정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어떻게 녹여내고, 또 어떤 배움으로 삶을 이어갈 것인가는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돌아보면 보잘것없는 일이라 여겼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은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온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 잘 살아왔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경청이다.


경청은 타인을 위한 태도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경청은 나 자신에게도 필요하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난 삶이 전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는 것. 그 순간 비로소 나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젊은 날에는 열정과 활력으로만 달려가느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틈조차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그 소중한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경청의 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누구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산다. 특히 은퇴 후에는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때 가장 큰 선물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묵묵히 들어주는 귀다.


좋은 인연도, 귀 기울여 듣는 자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사람들을 만나며, 내 삶과 맞닿는 인연을 스스로 이어가야 한다.




은퇴 후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나는 내 삶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친구는 조언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응, 네가 그런 마음이구나” 하고 차분히 들어주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답은 내 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친구가 해준 말보다, 끝까지 들어준 귀가 더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성인이 된 자녀가 삶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 부모로서 우리는 쉽게 충고를 하고 싶어진다. “그건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 대신, “그랬구나, 네 마음이 힘들었겠다” 하고 들어주기만 했을 때, 자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설 힘을 얻는다. 말보다 더 큰 선물이 경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청은 단순히 입을 다물고 귀를 귀울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이자, 말보다 더 큰 선물이다. 우리가 남은 인생에서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상대가 온전히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열어주는 자리일 것이다.


말보다 더 소중한 경청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깊이 확인한다.

오늘 하루,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이 되기를 바라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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