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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스를 타고...

Chapter Ⅱ 

   내가 지금 기억나는 시절은 네다섯 살부터다.


   나는 매일 아침 엄마 손을 잡고 집 근처 주유소 앞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 버스가 올 때까지 주유소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율무차나 코코아를 뽑아 마셨고, 그걸 다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버스가 왔었다.


   그 버스를 삼사십 분 정도 타면, 어느 한적한 곳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 안에는 방이 정말 많았고, 큰 병원처럼 보였다. 나는 병원처럼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마냥 좋지 않았다. 엄마랑 떨어져 있는 게 그땐 불안하고 무서웠고, 건물 안에 있는 방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들이 힘들어서 하기 싫었다. 네다섯 살이었던 나는 아직 치료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이었고, 그저 아프고 힘들고 불편한 것들이 싫었다.


   그 당시 치료 시간은 한 시간당 40분이었고, 비용은 한 시간당 1만 원이었다고 한다. 거기까지 가서 40분만 하고 오진 않았고,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갈 때마다 몇 시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나를 재활치료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10분이라도 더 해달라고 매일 부탁하셨다.


   당시 물가로 봤을 때 상당히 부담될법한 금액이었고, 장애아동의 재활 물리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전혀 없던 시절이라서 치료를 받을 엄두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치료를 받는다 해도 끝까지 받지 못하고, 얼마 못 받다가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우리 집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나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몇 년 동안 꾸준히 재활과 물리치료를 받게 해 주셨다. 나도 치료를 끝까지 받지 못 한 케이스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3년 정도 받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기간만이라도 꾸준히 치료를 받게 된 것이 지금은 참 감사하게 생각된다. 치료를 못 받게 된 이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혼자서 책을 읽어서 녹음했고 그걸 들으면서 발음이 부정확한 걸 연습했다. 걷는 것도 어릴 때부터 항상 의식해서 걸어서 이게 습관이 되어 요즘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의식해서 걷게 된다. 웃는 것도 입이 삐뚤어질까 봐 매일 거울 보면서 웃는 것을 연습했다. 매일 물을 마실 때도 물컵에 담긴 물을 흘리지 않고 걸어가는 걸 연습했다. 이외에도 나는 생활하는 전반에 걸쳐서 모든 것이 다 연습이었고 혼자만의 훈련이자 재활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연습하지 않는 것들을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혼자서 연습을 해 오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이런 연습을 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는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연습을 해야 되는 건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모님이 나한테 어릴 때부터 헌신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왜 나는 이렇게 몸이 불편한 것인가'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다.

 

   지금도 나는 가끔 40인승의 버스를 탈 때면 30년 전 집 근처 주유소 앞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러 갈 때 탔던 셔틀버스가 생각이 난다. 그땐 잘 걷지 못해서 항상 버스 계단을 올라탈 때면 엄마가 뒤에서 나를 들어서 버스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셨는데, 이젠 엄마가 뒤에서 나를 들어주지 않아도 버스를 탈 때 잘 올라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 자판기를 볼 때면 믹스커피보다는 아직도 율무차와 코코아에 먼저 눈길이 간다.


   네다섯 살 무렵,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막간의 시간에 율무차와 코코아 중에 뭘 먹을지 고민했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몸은 정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불편했지만, 네다섯 살이었던 그때가 참 좋았던 시절인 것 같다. 그때는 율무차와 코코아 중에 뭘 먹을지만 고민하면 되던 때였으니까... 그땐 율무차와 코코아 중에 선택해야 되는 게 참 힘든 선택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른들이 가끔씩 말하는 ‘그땐 그랬지...’라는 말을 이젠 나도 하게 된다.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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