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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다시 입시

Chapter Ⅲ 

   작곡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는 건 유학이 무산된 이후 많이 생각해 봤지만, 교직이수를 하기 위해서 교육대학원에 가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고, 전혀 나의 계획에 없었다. 오히려 교직이수를 하기 위해서 교육대학원에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방과후 수업을 하면서 학교라는 곳이 좋아졌고, 그곳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방과후 수업을 하면서 한 달 정도 시간을 가지고 나의 새로운 미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결과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직이수를 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중등 음악 교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9월 초, 방과후 업체 사장에게 내가 사정이 생겨서 이번달까지만 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학생들이 많이 늘어서 월급도 더 올려줬는데 올해까지 같이 해 주면 안 되겠냐며 나를 붙잡았다. 안 그래도 평소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장이었고, 더군다나 대학원 입학이라는 목표가 생긴 이상 일을 더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사장한테 지금 그만둔다는 말을 9월 초에 하는 거니까 9월 말까지면 사람 구할 시간은 충분한 것 같다고 말하자 사장도 알겠다며 사람을 구해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9월 말 이전에 나의 후임이 구해져서 깔끔하게 9월 말까지 일하고 방과후 수업은 끝냈다. 


   10월부터 독서실에 등록해서 하루종일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입학시험 내용은 서양음악사였다. 학부 3학년 수업 중 서양음악사 수업은 1년 동안 들어야 되는 작곡과 필수 수업이라서 서양음악사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서양음악사 수업이 참 싫었다. 이천 년 전 음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식으로 발전이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은 서양음악사를 왜 그땐 그리도 하기 싫었던지...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서양음악사 시험을 칠 때면 시험지에 장문의 편지로 답안을 대신했던 시절이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후회로 남게 되었다. 물론, 학부 3학년 때 작곡 공모전, 콩쿠르, 그리고 크고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던 건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았지만, 서양음악사라는 빈틈도 함께 공존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대학교 3학년때의 서양음악사 실력으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 왔기에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서양음악사 책 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 서양음악사 책으로 혼자서 심도 있게 공부해 나갔다. 구체적으로 설명된 서양음악사 책 상·하권을 사려니까 그 당시 각 권당 5만 원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독서실 비용을 부담하면서 책을 10만 원 치 사려니 부담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그 책을 대여한 후 복사를 해서 공부를 해 나갔다. 천 원이 아쉬웠던 당시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대학원 가겠다고 일도 그만뒀는데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까지 요청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 들어서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비용은 일절 도움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이런 나를 부모님께서는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서양음악사 공부는 하다 보니 탄력이 붙었고, 이천 년 서양음악사의 흐름에 대해 전반적으로 정리가 되어갔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게 불편한 나로서는 장문으로 답안을 써 내려가는 게 힘들었지만, 대학원 입학시험 당일 시험지를 받고서 굉장히 세밀하게 정돈해서 답안을 써 내려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결국 우수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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