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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상담 선생님

Chapter Ⅲ 

   상담 선생님과의 인연은 버스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12월 중순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한 후 열흘 넘게 혼자 이겨내 보려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엔 그 분노가 가해자한테 향했지만, 나중엔 나한테로 향해 갔다. '왜 나는 그때 버스에서 소리치지 못했을까'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게 되었다.


   대학원 입학 후 학교 내에 심리 상담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학원 수업에서 내가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과 나를 멸시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학부 입시 레슨을 같이 받은 친구에 대한 어려움으로 상담을 받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여태까지 내가 살아왔던 환경들이 그렇게 내몰리게 한 것이라 인지하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나약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혼자 이겨 내보려고 했다. 하지만, 버스 성추행은 도저히 혼자 이겨 낼 수 없었다.


   용기를 내서 학교 상담실로 전화했다. 내 상황을 말하니 오늘 상담실로 올 수 있으면 바로 오라고 해서 전화를 끊고는 학교로 갔다. 여전히 학교로 가는 길에 버스를 타는 건 힘든 일이었다. 버스에 대한 두려움과 버스에서 나의 뒤에 사람이 서 있으면 경계하고 자꾸 뒤돌아보며 가까스로 학교에 도착했다. 상담실 카운터 조교에게 내 이름을 말하니 조교는 상담하는 방으로 나를 안내해 줬다. 상담하는 방은 굉장히 아늑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상담 선생님께서 도와주셨고, 나는 그 이끌림에 따라 말을 이어가다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성추행을 당할 때 하지 마라는 말 한마디 못 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참고만 있었던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어린 시절을 물어보셨다.


   감정을 가다듬고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고, 기억의 차례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나의 말을 한참 들으시다가 결국 상담 선생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 다른 어느 누구라도 나의 어린 시절과 같은 상황을 겪어왔다면, 그 누구라도 나처럼 성추행을 당할 때, 그리고 다른 부당한 일을 당할 때면 나처럼 참고만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계속 이야기해 주셨다.


   원래 상담은 횟수를 정해놓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나는 졸업할 때까지 계속 와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상담 선생님이신 박경희 선생님과의 인연은 졸업할 때까지만 지속되는가 싶었는데, 졸업 직전 나의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졸업 후 임용고시를 합격할 때까지 인연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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