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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교육봉사와 지역아동센터

Chapter Ⅲ 

   2009년 대학교와 대학원 신입생부터는 교직이수를 하는 조건으로 교육봉사 60시간 이상이 요구되었다. 나는 대학교를 2008년에 입학했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교직이수를 했다면 교육봉사는 안 해도 됐지만, 대학원 입학을 2013년에 했기 때문에 교육봉사 60시간은 교직이수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교육봉사를 처음 한 곳은 어르신들이 계시는 한글학교였다. 어렸을 때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뒤늦게나마 한글을 익히기 위해 오신 곳이었다. 한글학교에는 나의 외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이 많으셨고, 간혹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어른도 계셨다. 세 달 정도 매주 한 번씩 그곳으로 가서 한글을 가르쳐드리는 봉사를 했다.


   한글학교에서 어르신께 내가 받아쓰기 문제를 낼 때면 옛날 노래 가사를 많이 냈다. <섬마을선생님>이나 <고향역> 같은 옛날 노래 가사를 내가 문장으로 읽으면서 문제를 내면, 첫 문제는 아무 말씀 없이 받아쓰기를 하셨다. 그다음 문제도 첫 문제의 가사를 이어서 내면 어르신들은 이내 눈치를 채시고는 “선생님 이거 이미자 노래 섬마을 선생님 아니에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맞다고 말씀드리면 어르신들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받아쓰기를 셨다.


   세 달 정도 매주 교육봉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북대학교 물리교육과 조교를 하던 중, 교직원 선생님이 나한테 교육봉사는 하고 있냐며 물으시길래 나는 한글학교에서 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직원 선생님은 미성년자 학생이 있는 기관에서 해야 교육봉사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자마자 여태까지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게 교육봉사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봉사활동이었구나 싶었다. 처음엔 그 시간이 그저 버려진 시간이었다고 생각 들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언제 또 어르신들한테 한글을 가르쳐 드릴 수 있겠나, 지금 아니면 하지 못 했을 일을 경험했다고 생각하자라며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나름 한글학교에서 봉사활동 할 때가 재미있기도 했고, 어르신들이 살아오시면서 겼었던 수많은 경험과 경륜을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 초중고등학교나 지역 아동센터에서 교육봉사를 알아봤는데, 연결이 바로 잘 되지 않고 계속 거절당하다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던 곳이 내가 살고 있던 동네의 지역아동센터였다. 알고 보니 그곳에는 기증받은 피아노가 두 대 있었는데, 피아노를 레슨 해 줄 사람이 없어서 피아노 레슨을 해 줄 수 있는 교육봉사자를 찾고 있던 찰나였고, 나도 다른 교과목을 봐주는 것보다는 피아노 레슨을 해 주는 게 더 편했으니 서로 잘 된 일이었다.


   2014년에는 조교를 연이어하지 않고, 경북대학교 근처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조교도 같이 할 순 있었지만,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피아노레슨과 조교를 다 같이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그래서 조교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2014년 한 해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노 레슨을 통해 내 용돈 벌이는 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감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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