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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25.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7

7. 댁은 왜 죽으려고 하오?

나는 다시 방갈로 안으로 들어섰다.


“이걸로 갈아입으쇼.”


다행히 중년 남자가 수건과 함께 여벌의 반팔 티와 반바지를 내주었다.   


“곧 죽는 사람이 웬 여벌?”


내가 묻자 중년 남자가 답했다.


“저승열차에 당신이 더 탈 줄 누가 알았나 부지.”


그와 나는 실없이 웃다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급히 옷을 갈아입었고, 여자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잠시 후 중년 남자가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 먼저 소개부터 하지요. 어차피 같이 죽을 사이인데.”


내가 먼저 답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소개가 뭐가 필요해요?”

“그래도 왠지 심심하니까…”

“어차피 곧 죽을 건데 심심한 게 뭐가 중요하죠?”


여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라떼의 강을 함께 건널 텐데 통성명 정도는 해야겠지요?”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 라떼의 강?”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레테의 강 아니고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무렴 어때요? 망각의 강 맞잖아요. 죽는 마당에 무슨…”


죽는 마당에 맞고 틀린 것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틀렸으니까 전부를 잊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중년 남자가 그 틈을 타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방기순이라고 하오. 나이는 마흔넷…”


남자가 두 손을 펼친 채 엄지를 접었다.


“그러니까, 사땡.”


소년이 물었다.


“아저씨는 왜 죽으려고 하는데요?”


소년의 말에 남자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졌다.


“그게, 나는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소.”


그제야 남자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등 쪽에 ‘충신태권도’라고 쓰인 검은 반팔 티에, 흰 도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내가 입은 티를 당겨보니, 내 등짝에도 ‘충신태권도’라고 쓰여 있었다.


“벌써 십 년도 더 됐어. 근데 3년 전에 건너편에 우리 도장보다 서너 배는 되는 도장이 생겼지 뭐야. 생긴 것도 뺀질뺀질하게 생긴 놈이, 무슨 홍보를 그렇게 해대는지.”


소년이 물었다.


“거기 때문에 망하셨군요?”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쳐야지, 무슨 어린이집도 아니고 덤블링에 미끄럼틀에!”


여자가 말했다.


“요즘 태권도장은 키즈카페 같아요.”

“태권도 정신과 무도를 배우는 곳이 태권도장이지! 태권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도요. 거기서 왜 댄스를 배우고, 사범들도 계집애같이 생긴 놈들만 뽑아놓은 거냐고!”


남자가 씩씩거리며 두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곧 부르르 떨던 주먹은 힘없이 풀렸다.  


“그 새끼 때문에 망했지. 뭐 요즘 시류에 뒤쳐졌다고 쳐. 나중에 알고 보니 마누라까지 우리 애를 그 도장에 보냈더라고!”


여자가 말했다.  


“요즘 태권도장은 육아까지 도우니까요.”        

“우리 애는 이미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데도?”

“운동을 배우는 유치원이라고 보면 되죠.”

“그럼 어린이축구단을 다닐 것이지. 왜! 왜!”


중년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분노에 찬 얼굴로 허공을 쏘아보았다.


“이 새끼, 너! 네놈이 진짜 태권도를 알아? 발 태! 주먹 권! 길 도! 태권도 정신은 그런 게 아니야! 태권도 박사까지 땄다는 놈이 그것도 몰라? 태권도에 학위는 또 무슨 필요야? 그래, 백번 양보해서 태권도를 더 많이 연구했다고 쳐! 학위까지 딴 놈이 도장 운영을 왜 그 따위로 해!”


그는 좁은 공간에서도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바람을 휙휙 갈랐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핏물이 흘러내릴 듯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소리쳤다.


“네놈 죽여버릴 거야!”


방기순의 분노 앞에 겁을 먹은 여자는 구석에서 다시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고, 소년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잠시 그를 말릴까 하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럼 죽여버리지 않고, 여긴 왜 오셨죠?”


남자가 멍한 얼굴로 할 말을 고르다가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죽이는 게 어디 쉽나. 전과자 아빠가 되기는 싫다네.”


내가 물었다.


“자살한 아빠가 되고는 싶고요?”


남자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당신 무슨 말을 해도, 같이 죽는 처지에 정말 이럴 거야?”

“아직 진짜로 같이 죽을지는 결정 안 했거든요?”

“하, 진짜 나한테 정말 죽어보고 싶어?”

“원수도 못 죽여놓고, 말라깽이 청년은 때려죽이겠다고요? 혹시 사람 골라가면서 힘자랑하는 거 좋아하세요?”

“이 녀석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뭐 그런 거?”

“내가 제일 증오하는 스타일이야!”


여자가 소리쳤다.


“그만들 하세요! 이러다가 오늘밤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면, 우리는 지옥 같은 하루를 또 살아야 한다고요!”


소년이 거들었다.


“나도 이 카톡감옥에서 계속 다구리 당해야 하고요.”


모두의 시선이 소년에게 쏠렸다.


“카톡 감옥?”


여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 친구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니?”

“친구는 무슨. 클래스메이트. 일진들한테요.”

“일진들이, 크, 클래스가 있다고?”

“하, 누나. 일진들이 맨날 돈 뜯어가요. 사채업자처럼. 게다가 집에 있을 때도 카톡에 불러놓고 계속 욕한다고요.”


‘사채업자’라는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고, ‘욕’이란 말에 여자가 움찔거렸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럼 핸드폰을 꺼두던지.”

“바로 답톡 안 하면, 다음날 일초에 한 대씩 맞아요.”

“그렇다고 여기서까지 그걸 들여다본다고?"


남자의 말에 소년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읽씹 중이에요. 맞을 게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안 맞고 죽는 게 더 쌤통이지요. 숙제가 잔뜩 쌓였는데 안 해도 되는 기분, 아, 빚이 잔뜩 쌓였는데 안 갚아도 되는 기분 같은 걸까요?”


잠시 옥탑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리고, 달빛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방기순이 물었다.


“부모님은 너 왕따인 거 알고?”

“왕따라고는 안 했거든요?”

“미, 미안하다. 그렇다고 죽는 건 아닌 거 같아서. 부모나 선생한테 말은 했고?”


소년의 새하얀 얼굴이 달빛을 받아서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제야 후드를 뒤집어썼어도 숨기기 힘든 상처들이 보였다. 얼마나 맞고 찢겼는지, 그것들은 운석구덩이처럼 깊고 진하게 파였다.


“아빠는 바쁘시고, 엄마는 한국에 없어요. 선생님은 별 반응이 없고요. 씨발,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어요.”


여자가 물었다.


“그래서 죽으려는 거야?”

“국어선생님이 그랬어요. 내가 죽으면 우주도 죽는 거라고.”


방기순이 말했다.


“그건 시적인 표현일 뿐이야.”


내가 물었다.


“너도 그 일진 녀석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니?”


소년의 눈이 달덩이처럼 크게 뜨였다.


“저 혼자서요? 그러다 개죽음당하려고요? 적어도 죽음은 제가 선택하고 싶어요. 그것만이라도.”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아빠한테는 말해봐야지.”

“벌써 여러 번 말했거든요? 그런데도 저보고 처신을 잘하라는 말이 전부였어요.”


내가 말했다.


“학교가 무슨 회사인 줄 아나.”

“아빠는 그런 줄 알아요.”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자살까지 생각하는데…”


소년의 눈이 다시 은은하게 일렁였다.


“한 번은 아빠가 알아듣게 얘기하려고, 아빠 은행의 보안을 뚫고, 홈페이지에 메시지를 띄운 적도 있어요.”


그 말에 깜짝 놀란 여자가 잠시 선글라스를 내려서 소년을 보았다.


‘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내가 쳐다보는 걸 의식했는지 여자는 재빨리 선글라스를 올리며 소년에게 물었다.     


“어머, 너 해킹도 하니?”

“화이트 해커가 꿈이었어요.”

“화, 화이트. 그러니까 하얀 해커? 네가 어떻게 백인이 돼?”


여자는 잠시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어이없는 표정들을 확인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아, 국적? 그렇지! 미국에서 해킹을 해야 더 쉽지?”


소년이 여자를 보며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화이트 해커는 착한 해커를 말해요. 보안을 뚫고 나쁜 짓을 일삼는 블랙 해커를 막거나, 잡는 일을 하지요.”

“아…”


여자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너 멋지다. 그런 꿈도 있고.”

“누나는 없어요? 꿈?”


어쩌다가 죽음을 앞두고 꿈을 얘기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곧 이 상황에서 ‘꿈 얘기’는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피식 웃었다.


“그런 거 난 이제 없어.”

“이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빠 회사 홈피에, 뭐라고 썼는데?”

“아빠, 나 죽을 거 같아. 맞아 죽거나 스스로 죽거나.”

“그랬더니?”

“그날 밤 아빠한테 처음으로 맞았어요.”


소년이 작은 얼굴에서 가장 큰 운석구덩이를 가리켰다.


“이게 아빠의 주먹 때문에 생긴 거예요.”


방기순이 펄쩍 뛰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어린 아들을 주먹으로.”


여자가 한 손을 뻗어 소년의 볼을 가만히 쓸어주려 했다.


“네 실력으로 일진들을 엿 먹이면 되지 않니?”


소년이 여자의 손길을 피하며 후드를 더 바짝 잡아당겼다.


“놈들하고 컴퓨터 하곤 거리가 멀어요.”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따로 금융거래를 할 일도 없을 테고…”


소년이 속삭였다.


“놈들을 죽이려면 칼이나 주먹밖에 없어요.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에요.”


그때 방기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죽여줄까?”


소년의 눈이 그믐처럼 반짝였다.


“아저씨가요?”


내가 물었다.


“경쟁 도장 관장도 못 죽이잖아요?”


방기순은 더 세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은 절대 봐줄 수 없어!”


여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과자 되는 건 싫다면서요?”


그 말에 방기순은 복잡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죽을 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소.”


방기순은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소년에게 말했다.


“아직 오늘은 길다. 말만 해. 놈들 정도는 혼내주고 죽지 뭐.”


소년이 피식 웃었다.


“됐어요. 나는 진언이라고 해요. 나진언.”


여자가 말했다.


“그래 진언아. 반가워.”

“반갑다니요, 누나.”

“그래도 라떼, 아니 레테의 강을 같이 건너잖니.”


소년은 가만히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들의 표정에 서린 외로움과 쓸쓸함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오죽 외로우면 같이 죽으려고 할까? 게다가 이들은 모두 겁쟁이였다. 혼자 죽을 용기가 없어서 서로 죽음을 돕고, 자신도 죽으려는 모질이들.


“모질이 같으니.”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뱉어놓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여자가 말했다.


“당신까지 포함해서지요?”


나는 민망한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석정. 아시다시피 연인 때문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요.”


세 사람은 알만하다는 듯 내게 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뭔가 물어보면 소설이라도 써서 답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방기순이 잠시 입을 벙끗하더니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어떤 놈이 채갔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노코멘트”


딱 거기까지였다. 사실 죽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끝없이 불어나는 빚, 취직하기 어려운 현실, 사람에게 배신당한 상처, 보이스피싱 사기까지. 어쩌면 현서의 일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여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죽으려고 해요?”


그러나 여자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내 이름은 안수하, 들어보셨어요?”


안수하. 안수하. 안수하. 세 번이나 되뇌었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걸까? 저마다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자는 그런 세 남자를 담담히 돌아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제 이유예요.”

“네?”

“그리고 씨게 뒤통수를 맞았지요.”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거기까지만 말하고 싶어요.”


여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더 거세진 바람소리가 연신 창문을 두드렸다.


웅-


그 소리에 잠잠히 귀 기울이던 안수하가 말했다.


“우리 마지막으로 산책이나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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