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6
6. 자살에도 순서가 있다고?
“이봐! 눈 좀 떠봐!”
누군가 내 볼때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잠깐 기절을 했었나. 눈을 떠보니 두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것이고, 저들은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경멸하고 있었다는 것.
‘도대체 왜?’
궁금해서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묻고 싶었다. 그러나 힘을 줄 때마다 세상이 빙빙 돌았고, 관자놀이가 터질 듯이 아파왔다.
“다, 당신들 뭐야?”
간신히 한마디를 던지자, 그들 중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 남자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우리의 거사를 초치려 드는 거야?”
“거사?”
“그래, 거사!”
중년 남자의 눈썹이 갈매기 날개처럼 모로 접혔다. 남자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다른 이들을 한번 쓰윽 둘러보고는 다시 내게 쏘아붙였다.
“우리가 먼저 죽으려고 왔단 말이야!”
“머, 먼저 죽는다고?”
“우리 셋은 오늘밤 여기서 같이 죽을 거야. 그런데 당신이 여기서 먼저 죽어버리면, 경찰이 와서 이 방갈로까지 조사할 거 아니야? 그럼 우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구석에서 무릎을 모은 채 수그리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여긴 우리가 예약했어요.”
목소리로 봐서는 2~30대 같았다.
“부디 다른 곳에서 죽어주세요.”
캠핑용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소년도 덧붙였다.
“댁도 같이 죽으려면 번개탄 피울 때까지 조금 기다리시던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들은 오늘밤 이 방갈로에서 같이 죽으려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자살카페?”
내가 묻자 중년 남자의 눈썹이 다시 일자로 펴졌다. 살짝 벗겨진 머리의 곳곳에서 밥풀이 보였다.
“당신이 나를 구했군요?”
남자는 불쾌한 얼굴로 두 눈을 부라렸다.
“그러니까 여기서 먼저 죽을 생각 마.”
“세상에, 자기들 제대로 죽으려고 남을 살리다니.”
소년이 방 한쪽에 놓인 번개탄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택해요. 지금 무의도를 벗어나든지,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저거 마시든지. 그래도 우리는 험한 꼴은 보여주기 싫어서 저걸로 죽기로 했어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바다라도 밑에 돌부리가 있는데, 뛰어내리면 사지가 제대로 남아있을까요?”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괜한 오기가 일었다.
“죽는 데 순서가 어딨어요?”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섰다. 방갈로의 문짝으로 휘청거리며 다가섰다. 그러자 중년 남자가 빠르게 다가서서 내 팔을 꺾어 버렸다.
“윽!”
“경고하는 데 여기서 우리 허락 없이 나가면 내가 죽여버릴 거야.”
중년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유단자거든.”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거 잘 됐네. 먼저 죽여주시지요.”
중년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저도 모르게 손을 놓았다. 나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바닷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벌게져 나를 쫓아 나왔다.
“자, 잠깐만요!”
“걱정들 마세요. 나는 집에 갈 거니까.”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년 남자뿐 아니라 소년까지 뛰쳐나와 내 발목을 붙들었다.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요! 형 죽으면 우리는 오늘 못 죽는다니까!”
제법 목소리가 컸는지, 나를 비롯한 네 사람은 그 말에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바닷바람이 거세고, 방갈로마다 어느 정도 간격이 있어서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안 죽는다니까? 나는 집에 간다고.”
역시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각서 쓰고 가든가!”
“각서요?”
어이가 없었다.
“곧 죽을 사람들이 무슨 각서요? 내가 각서를 써준다 한들 그게 실효성은 있을까요? 각서만 써주고 가서 죽으면요?”
아무도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중년 남자는 금세 겁먹은 삽살개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제발, 부탁입니다. 믿겠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믿겠다는 건지. 남자는 쉽게 체념했다. 문득 남자는 지금껏 많은 이들에게 배신당하며 살아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도, 여자도 무기력한 얼굴로 다시 방에 들어섰다. 잠자코 있던 여자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제발 죽는 게 급하더라도, 섬은 나가서 죽어주세요.”
-쾅
나는 문이 닫히는 동안에도 빠르게 방갈로 안을 살폈다. 이미 창문 쪽에는 비닐과 테이프로 빈틈을 빼곡히 메워놓았고, 한쪽 구석에는 무언가가 신문지에 덮여있었다. 그 무언가는 번개탄일 것이었다.
-탕, 탕, 탕!
나는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중년 남자가 문을 열었다.
“이러지 마쇼. 우리도 괴롭소.”
“한 가지만 여쭙지요.”
“또 뭔데?”
“나는 아까 그냥 어지러워서 실족했을 뿐이에요. 살려준 건 고마워요. 그런데 나는 죽을 생각이 없어요.”
중년 남자는 다 귀찮다는 듯 피식 웃었다.
“곧 죽을 우리가, 곧 죽을 당신을 못 알아볼까?”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죽을 걸 알아봤다고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이 해변가에 들어왔을 때부터 뒤를 쫓았소.”
“뭘 보고요?”
이번에는 여자가 담담히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한번 보세요.”
여자는 손거울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아…”
거기에는 온몸에 피칠갑을 한 사내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피로 떡이 졌고, 목과 팔목 부근에도 피가 마른 자국이 있었다. 심지어 내 입가에도 아직 핏물이 남아있었다. 누가 봐도 곧 죽거나, 누구 하나 죽일 놈 같아 보였다.
‘그래서 택시기사 아저씨가 황급히 떠난 건가?’
여자가 말했다.
“나는 눈빛을 보면 알아요. 미치지는 않았다는 걸. 그러나 눈빛은 울고 있었지요. 떠나간 연인 때문인가요?”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런 몰골을 발견하고 중년 남자는 내 뒤를 밟은 것이고, 공교롭게도 그 덕분에 실족한 나를 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문득 이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 같이 오늘 죽을 건가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여자가 희미하게 웃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죽는 게 세상에 대한 마지막 복수랄까요.”
여자의 말에 중년 남자가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소년은 묵묵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멍하니 서있었다.
“당신들이 스스로 죽는 게 왜 복수죠?”
나는 인상을 쓰며 덧붙였다.
“복수를 하려면 먼저 다 죽여버리고 죽으면 되잖아요!”
그 말에 세 사람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 사이, 여름바람이 우리를 한번 쓰윽 훑고 지나갔다. 나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떨면서 말했다.
“아, 일단 오줌 싸고 올 테니 나도 껴줘요.”
나는 공터의 솔숲 한쪽에 오줌을 갈기며 몸서리를 쳤다. 과연 이게 잘한 선택일까? 자칫 저들을 어째보려고 합류했다가 꼼짝없이 저들과 같이 죽는 거 아닌가? 지금이라도 이대로 공터를 돌아서 멀리 도망칠까? 저들이 죽든 말든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괜한 오지랖 때문에 무슨 혐의라도 뒤집어쓰는 게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제 저들과 나는 상관없는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쨌든 저들은 내가 해변에 들어설 때부터 나를 눈여겨보았고,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나를 구했다. 나는 지하철에 뛰어든 사람을 구했고, 저들은 바다에 실족한 나를 구했으며, 이제 나는 저들의 동반자살 앞에서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떠나버릴까, 아니면 브레이크를 걸어?’
나는 다시금 허리춤을 부르르 떨면서 생각을 곱씹었다. 잠시 잠깐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죽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내게 그런 죽음은 사치였다. 해수욕장 세면대로 가서 핏물을 씻어냈다. 해수욕을 마치고 돌아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여자아이가 잔뜩 겁을 먹었는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거? 물감놀이. 물감!”
여자아이가 안심한 듯 빙긋 웃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잠시 방갈로 쪽을 보았다. 내가 이대로 가버리면 저들은 틀림없이 오늘밤 안에 죽는다.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러다가 내가 죽든 한번 가보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핏물을 말끔히 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