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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14.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4

4. 날개 잃은 취준생

“서, 석정아…”


현서의 말에 대꾸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까 저팔계를 만나고 나올 때는 다리가 풀려서 계단을 겨우 내려왔는데, 지금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초인적으로 서너 계단씩 건너뛰었다. 살짝, 발목이 접질린 것 같기도 한데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천지에 울렸다. 나는 원숭이처럼 벌건 얼굴로 끼익끼익,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내가 바닥이 아닌 옥상으로, 거꾸로 다시 뛰어올라간 건 계단을 거의 다 내려설 무렵 받은 전화 때문이었다. 때마침 허벅지가 웅웅거리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소리쳤다. 틀림없이 구세주 팀장일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구라도 좋았다. 


“끄윽끄윽…”


간신히 숨을 몰아쉬면서 욕을 내뱉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꺼억, 야, 야, 이… 개, 개…”


바로 그때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구 팀장이 아닌 엄마의 울부짖는 목소리였다.


“석정아, 아가야아- 왜일케 전화를 안 받아, 아가 괜찮니이, 이이?”


엄마의 턱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엄마?”

“너 어디야? 아으어, 어디로 끌려갔어? 아이고, 부처님. 아가아아!”

“뭔 소리야?”

“조금만 기달려어, 으어어- 아가야아, 기달려어. 내으가, 도온 보냈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이 갑자기 암전된 기분이 들었다. 


암전.


연극무대에서는 암전이 좋았다. 시간이 멈춰진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짧은 순간 무대에 선 현서와 입을 맞춘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이 암전이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앞이 뭉크의 그림 <절규>에 나오는 배경처럼 일그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집이 아닌 옥상에 서있었다. 왜 이곳에 올라왔을까. 다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소리쳤다. 


“엄마! 돈 보냈어?”

“아가아, 이제 풀어준단다. 아으아-”

“그거 보이스-”


나는 말문이 턱 막혀서 잠시 할 말을 골랐다. 어차피 ‘보이스피싱’이라고 해도 엄마는 잘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이해를 시켜주면 더 절망할 것이었다.


“아, 됐고. 걱정 마. 근데, 돈은 어디서 났고?”

“어서 나긴, 아들이 죽어가는데, 우리, 거기서 또 빌렸지.”

“……”

“아들, 아들?”

“또 빌려는…, 주긴 줬어?”

“아버지, 유품 내줬다.”

“시계?”

“아들보다 소중한 게 어딨나. 아이고, 정말 풀어준 거 맞지?”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울지 마. 이따 다시 전화할게.”


나는 일단 엄마를 안심시키고 곧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칼이라도 맞은 것처럼 다급한 나와 달리 ‘112’에서는 몇 번에 걸쳐 전화를 돌려주었고, 담당자는 몇 가지를 묻고는 건조하게 답했다.


“일단 접수되었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저, 저기요, 선생님! 전 재산, 아니 저희 가족의 전부가 털렸어요!”


담당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언제, 언제 놈을 잡을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지만, 범인을 잡는 케이스가 희박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이대로라면 며칠 못 버틴다고요!”

“죄송합니다.”

“나, 난,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요!”

“유감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니까요!”


누가 먼저 전화를 끊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옥상 난간에 서있었다. 어느새 종로거리에는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고, 가로등에는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아, 사람이 이래서 죽는구나.’


삼십 평생 수많은 자살 뉴스를 접하면서도, 단 한 번도 제 목숨을 스스로 던지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의 무게와 존엄성을 논하기 전에, 너무 무섭고 아플 것 같았다. 억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알 것 같다. 그것은 환멸 때문이었다. 그 어디에도 철저히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에 대한 환(幻)이 완전히 멸(滅)했을 때의 그것. 그 완전한 어둠. 


여름밤은 선선했고, 명멸하는 불빛들은 아름다웠다.


다시 암전.


나는 마치 이상의 단편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허공을 향해 두 팔을 펼쳤다. 그리고는 가만히 난간에 한 발을 올려보았다. 


‘으윽, 가랑이…’


난간이 높아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바지춤을 감싼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역시 나한테 자살은 사치야.’


그 순간 남겨진 엄마도 떠올랐다. 먼바다에서 할아버지를 잃은 것도 모자라, 빌딩숲에서 아버지에 이어 아들마저 잃게 되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까?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순 없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엄마에게는 아직 기댈 버팀목이 있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세상은 아직 살만할 이유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아직 젊고, 잘생겼다. 나는, 나를 살리기로 했다. 


다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이야?”

“아이고, 아가,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그럼, 집에 가서 얘기해.”

“바쁠 텐데, 뭣 하러 인천까지 내려와?”

“낼부터 주말이니까 괜찮아.”

“카드영업은 주말에도 한다믄서?”


나는 차마 새로 시작한 일을 또 그만뒀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신포시장 돌면서 해도 돼.”

“지난달에 가져간 젓갈들은 다 먹었고?”

“고시원에도 반찬은 있어.”

“아이고, 니가 괜찮으니 엄마는 이제 살겠다.”

“이따 저녁에 봐.”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난간에 서서 종로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YMCA 건물 앞에서 현서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현서의 눈빛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나는 차마 현서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 건물 뒤쪽의 외부 계단으로 돌아내려갔다. 


-쿵, 쿵, 쿵, 쿵


아까 난간 앞에 다가섰을 때는 덜했는데, 철제 계단이 흔들리니까 높이가 실감이 되었다. 그제야 잠잠하던 고소공포증이 다시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쓸면서 내려왔다. 손바닥에 녹이 잔뜩 묻었지만 결코 손을 뗄 수 없었다. 간신히 다 내려온 후에는 내가 묵고 있는 청계천변의 고시원 건물까지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체력검사를 할 때 100M 달리기를 했던 이후로, 거의 처음으로 전력 질주를 하는 것 같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에 받쳤지만 절대로 멈출 수 없었다. 그대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 나야말로 진짜 금으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되면 금이나 돌이나 다를 게 뭔가?


낙원고시원 206호에 들어섰다. 방문을 열자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보름 전 교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208호 청년이 자살한 뒤로, 잠잘 때 빼곤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 고시원에 들어온 뒤로 자살한 사람의 소식을 들은 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개척교회를 여는 데 실패한 가장이었고, 두 번째는 지병을 앓고 있던 배우지망생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자살한 청년의 사유는 도무지 세세하게 추정할 수 없었다. 


“아직 한참 젊은데, 왜?”


이튿날 고시원 사람들은 경악했다. 자살한 청년의 방에서 합격통지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염원했던 합격을 했는데 자살을 하다니. 누군가는 그게 더 이상 도전할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교정직을 반대한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남편이 교도소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는 없겠지만,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옆방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도 수년간 감옥 생활을 했는데, 앞으로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섭지 않았을까.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감옥 같이 느껴졌을 테고. 기껏 합격했는데 축하는 못해줄 망정 부모는 푸념부터 늘어놓았을 테고.”


더위와 함께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나는 인천으로 출발하기 전에 잠시 좁은 방에 누워보았다. 살림은 일인용 침대와 나무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더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팔다리를 대자로 뻗어보려 했지만 양쪽 벽에 막혔다. 갑자기 잠기가 밀려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갯가에 묻힌 키조개를 캐려고 깊이 잠수한다. 두 팔을 홰홰 저을 때마다 모래바람이 일고, 송사리들이 줄달음을 친다. 호미 같이 작은 손으로 강바닥을 훑으면 고구마처럼 까맣고 긴 열매가 손가락 사이에 걸린다. 검지와 중지 사이, 약지와 새끼 사이,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아챘다. 녀석들이 캐스터네츠 같은 집을 열어 나를 힐끗거린다. 


물속의 세계가 너무 아늑하고 고요해서 나는 잠시 모래 바닥의 돌부리를 쥐고 뻐끔거린다. 엄마 뱃속의 양수에 웅크리고 있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물 밖으로 나가는 게 싫어 갓난아기는 그렇게 울었을까. 


작은 물고기가 조개 주위에 다가선다. 모래무지인가. 옳지. 이참에 녀석까지 잡아버리자. 용케도 녀석의 꼬리가 집게 손에 걸린다. 깜짝 놀란 물고기가 몸부림을 치자 주변의 모래가 하얗게 일어선다. 동시에 뭔가가 손을 톡 쏜다. 


꿀벌에 쏘인 것처럼 손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퉁가리인가, 쏘가리인가. 키조개마저 던져놓고 나는 둥글게 몸을 만다. 이번엔 내 손목을 그으려고 칼조개가 달려든다.      


“으악!”


소리치는 동시에 물속에서 흰 눈이 번쩍 뜨였다. 물속이 아니라 고시원이었다. 쪽창 밖으로 네온사인 불빛들이 밀려들었다. 그 소리에 달려온 고시원 주인아줌마가 소란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아니, 청년! 요즘 고시원 뒤숭숭한데 자기까지 왜 그래?”


주인아줌마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가 금방이라도 나를 건져 올려서 저 멀리 던져버릴 것만 같았다. 찢긴 그물 같다. 아마도 잠꼬대에 질린 옆방 사람이 얇은 벽을 두드리다 지쳐 선장을 찾았으리라.


“석 달 밀린 방세는 언제 줄 거야?” 


마침 잘 걸렸다는 듯,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아줌마가 언성을 높였다.


“며칠 말미를 줄 테니까 짐 꾸려! 밀린 돈 참는 것도 한두 번이라고.”


아줌마의 작살 같은 말투에 나는 점점 심해로 가라앉았다. 이럴 때는 등껍질이 필요한 걸까, 심해어와 같은 형광 촉수가 필요한 것일까. 내 몸의 촉수가 이끄는 대로 한 줌도 안 되는 짐을 챙겼다. 뻣뻣한 정장을 벗고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줄무늬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고시원을 나와 종각역에서 인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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