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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07.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2

2. 거절당하는 연습

한여름인데도 팔등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밖으로 나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한동안 거리를 맴돌았다. 남자 사원들이 붙든 자리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있었다. 갑자기 내가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까닭모를 수치와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다. 카드 모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두 달째가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거절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아직 오전이지만 더 이상 영업을 이어갈 의지가 남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이건 그저 카드 게임에 불과하다. 게임에 불과하다.’ 

‘기분이 더러우면 플러그를 뽑으면 그만이다.’

‘저들이 거절한 것은 나라는 인물이 아닌, 한국카드일 뿐이다.’

‘기분 상할 거 없다. 거절당한 적이 한두 번인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게 백배 낫지.’


아들이 빌딩숲을 헤치며 카드 모집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기겁했다. 


“너마저 빌딩 타는 일이냐? 나는 걸레질이라도 했지. 넌 걸레 취급을 받을 수도 있어.”

“매일 찾아오는 사채업자들한테 대걸레로 맞는 거보다 낫잖아.”


나는 점점 멍든 옥수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인천의 한 대학에서 같이 연극부 활동을 했던 현서는 울면서 이별을 통보해왔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뭐든 해보려는 나를 위로해주거나 타이를 줄 알았는데, 현서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같이 방송 진출할 거였잖아.”


현서는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고, 한참 스피치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몇몇 방송사에는 서류 합격까지 된 상태라고 했다. 둘 다 졸업 후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다. 나도 연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사의 드라마세트장에 드나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오디션을 보면 번번이 떨어졌다. 카메라 테스트를 해본 담당 PD는 솔직하게 자기 소견을 말해주었다. 


“얼굴이 좀 크세요. 언발런스. TV용 얼굴은 아니세요.”


그럼 어디용 얼굴입니까,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멍 때리며 종묘 근처를 한 시간째 배회했다. 점심식사를 일찍 마친 직장인들이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평소 같으면 사은품 도록을 들고 쭈뼛쭈뼛 다가섰겠지만 지금은 그럴 힘조차 없었다. 뱃구레에서 꾸르륵 앓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여기서 영업을 접어야겠다. 나는 구 팀장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알렸다. 


“바로 퇴근해도 될까요? 멘붕이 와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그런 일일수록 마음을 추스르는 게 중요해.”

“그래서 좀 쉬려고요.”

“그러지 말고 사무실에 잠깐 들렸다 가지.”


한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든 여직원들이 꺌꺌거리며 웃었다. 놀란 비둘기 몇이 앞 다투어 날아올랐다.  


“뭐라고요? 잘못 들었어요. 비둘기, 아니 사람 때문에…”

“내가 점심 살 테니까 먹고 가라고.”

“메뉴는요?”

“고등어나 삼치구이 어때?”     


여름인데도 손이 찼다. 누가 에어컨을 풀로 틀어놓은 거야. 사무실에 들어서자 손끝에 머물던 찬 기운이 전신에 퍼졌다. 카드 설계사들은 모두 밖으로 활동을 나가 회사는 텅 비었는데 맨 안쪽 책상에서 구 팀장 혼자 컴퓨터 앞에 코를 박고 있었다. 


“뭐 하세요?”


구 팀장은 양 손의 검지를 꼿꼿이 세워 자판을 열심히 두드렸다. 타법은 손가락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먹이를 찾는 대머리독수리처럼 눈알도 톡톡, 불거져 나왔다. 


“뭐 하시는지요?” 


살짝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곱슬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든다. 


“이번 달 팀원들 수수료 얼마나 나오나 따져보고 있었어.”

“얼마나 나오던가요?”

“여름이라서 한참 쳐질 거 같아.”

“한 블록 도는 데도 퍼질 정도니 말도 마요.”

“조금 괜찮아졌어?” 


구 팀장은 핸드폰을 챙겨들고 앞으로 나섰다. 구 팀장 차를 타고 다시 종로로 나갔다. 서울극장 맞은편 골목에 차를 세우고, 좁은 길 몇 개를 돌았다. 구석구석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자신들이 TV에 출현한 맛집임을 알리는 간판이 즐비했다. 고등어며 삼치 등속이 데칼코마니처럼 나란히 드러누웠다. 구 팀장은 개중 한 집에 들어가 1리터짜리 얼음물부터 꺼내 단번에 들이켰다. 


“아주머니, 고등어랑 삼치 하나씩 노릿하게 구워주세요.”


한 마디 툭 던져놓고 나머지 반 리터를 해치운다. 문득 구 팀장도 척추선을 중심으로 반으로 접어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궁금해졌다. 저 물배 때문에 똑같은 그림 대신, 각기 다른 추상화가 나오지 않을까. 구 팀장은 물병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아랫배를 움켜쥐고 두세 번 들었다 놓았다. 


“무슨 종교의식 같네요.” 


구 팀장은 다시 한번 뱃살을 흔들었다. 


“물을 많이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군. 덥기도 하고 말이야.”

“덥긴 덥지요.”

“말도 마, 지난여름에는 요로결석으로 죽다 살아났어.”

“요로결석이요?” 

“요도에 돌이 걸리는 거지. 수분이 부족해서.”

“그게 그렇게 아프다던데.”

“해산의 고통과 맞먹는다고들 하지. 그러니까 자네도 물 많이 먹고, 또 많이 팔아.”

“물을 팔라고요?”

“들지.” 


구 팀장은 삼치 한 점을 입에 넣고 말했다. 


“봉이 김선달 모르나?”

“그 물장수요?” 


나도 간장에 와사비를 풀었다. 


“사이비 거짓말로 강물을 팔았다는.”

“그런 건 속임수가 아니라 브랜딩이라고 하는 거야.”

“브, 브랜 뭐요?” 

“일종에 포장의 기술이랄까. 상품에 이야기를 담거나 이미지를 부여해서 플러스알파를 파는 거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내 볼 땐 그 사람이야말로 홍보 전문가야.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 타고났다고 보는 게 맞겠지.”

“얄팍한 꾀로 혀를 놀리는 게 말입니까?”

“좀 유들이 있게 하란 말이야. 유들이 있게.”


그 말을 들으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그럼 더 어떻게 하란 말이지? 갑자기 소주가 당겼다.


“소주 한잔 하시지요?” 


내가 냉장고를 가리키자, 구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 여기 참이슬 하나요.”


나는 구 팀장과 내 잔에 소주를 부었다. 일단 한잔 들이키고 삼치 한 점을 입에 욱여넣었다. 코끝에 와사비향이 맴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엔 구 팀장이 빈 잔을 채웠다. 


“우선 병원부터 돌아보는 건 어때? 일반 가게는 신용카드 심사요건 때문에 모집을 해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고, 큰 회사들은 보안 때문에 까다로우니 거리에 늘어선 작은 병원들을 공략하라고.”

“의사들은 더 깐깐하지 않습니까?”

“입구에서 먼저 만나는 이는 간호사야.”

“간호사라…”

“신용도가 높아 발급확률도 높으니, 자연스레 수입도 높아지겠지. 대부분 20대 여성들이니 소비에 대한 관심도 높고. 그녀들이 좋아할 만한 사은품을 적절히 제시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

“명품 같은 게 필요할 텐데…”

“이건 자네한테만 보여주는 건데 짝퉁 가방하고 지갑을 나열한 도록이야. 겉으로 봐선 진짜랑 별 차이 없지만 음지에선 3만 원 이내로 구할 수 있지. 카드 한 장당 수당이 10만 원씩 떨어지니, 이거 주고 건당 7만 원 남긴다고 보면 나쁘지 않을 거야.”


구 팀장이 좌우를 살피면서 도록을 슬쩍 내 서류가방에 집어넣었다. 나는 속으로 셈을 해보았다. 카드 한 장을 모집하면 10만 원, 하루에 1장만 모집해도 주 5일을 일할 경우 200만 원이다. 하루에 2장만 모집해도 400만 원! 짝퉁 사은품 가격인 3만 원씩을 빼도 각각 140만 원, 280만 원이다. 오전에 한 장, 오후에 한 장씩만 모집해도 얼마야?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 이 게임은 다른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야. 간땡이, 간땡이가 전부지. 얼굴이 두꺼우면 더 좋고. 그게 경력이고 능력이야.”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니 한 주먹만 불끈 쥐고, 한 손으로 계속 자작을 했다.


“이 사람, 오늘은 일단 좀 쉬지.” 


구 팀장이 소주병을 가로채 남은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세상이 빙빙 돌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누구든지 붙들고 신용카드 가입을 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병원에 들어가 볼까?


“그러면 정신병자 취급당할 걸?” 


내 속을 어떻게 읽었는지 구 팀장이 나를 조수석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세상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머리가 빙빙 도네요. 저 혼자 좀 걷다가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나는 골목을 벗어나 탑골공원에 들어섰다. 공원을 돌면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병원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막상 큰 거리로 나와 사위를 보니 천지가 병원이었다. OO치과, OO비뇨기과, OO성형외과, OO한의원 등등. 거리에 늘어선 상점의 반은 병원이었고, 반은 금은방이었다. 사위를 둘러보니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의 반은 노인이었고, 반은 커플이었다. 노인들은 대개 병원에 들어섰고, 커플들은 금은방에 들어섰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병원이 곧 금은방이었다. 들어가서 뽑아 와야 했다. 10만 원짜리 카드신청서를. 


“여보시오. 불 좀 있소?”


조금 전부터 팔각정 주위에서 나를 힐끗거리던 반백의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가 내 소매를 붙들었다. 


“아니요? 담배 안 피우는데요.”

“오늘 첫 출근이요?”

“아니요. 한 달 전부터…”

“그런데 왜 난 처음 보는 거지?”


조금 낡기는 했지만 밤색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아저씨가 세모난 얼굴을 갸우뚱 흔들었다. 가만히 있을 땐 몰랐는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니 뾰족한 턱이 도드라졌다. 은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에는 엷게 핏발이 서려있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단정했다. 


“처음 보다니요? 당연히 여기에 처음 왔으니…”

“좀 전에 한 달 전부터 출근했다지 않았소?”


아, 이 사람은 지금 이곳 탑골공원을 말하는 거구나. 공원에 출근이라니. 아저씨가 담배를 입에 문 채 그저 피는 시늉만 했다.


“나는 세 달 되었소. 퇴직 후 이곳에 오기 시작했지.”

“정년퇴직이요?”

“아니, 희망퇴직이었소.”

“희망하셨던 거예요?”


아저씨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득 저 날선 턱이 금방이라도 나를 내려찍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그들이 희망했겠지.”

“무슨 회사 다니셨는데요?”

“보험 업계 관리직이었지. 연봉도 빵빵했고. 그래서 지금 감당이 안 되오. 아내와 자식들은 아직 몰라. 회사에서 몇 개월 치 월급을 더 얹어주긴 했지만 이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려.”

“보험회사 다니셨다고요?”


눈이 번쩍 뜨였다. 


“왜 문제 있소?”

“아니요. 저는 카드 모집을 하고 있어요.”

“영업사원이구만.”

“그런 셈이죠.”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보험이든 카드든 영업을 했을 텐데 지금은 씨알도 안 먹힌다오. 당신 정도면 잘만 하면 그런대로 괜찮겠군요. 다만…”

“다만?”

“불법 영업 단속이 심해지니 그건 조심하시오.”

“불법 영업이요?”

“이상한 사은품 같은 거 말이오. 요즘 보파라치나 카파라치가 활개를 치고 있어서 법에 명시된 사은품 이상 주면 걸리기 십상이라오. 김영란 법도 있고.”


뜨끔했다. 세모 아저씨는 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를 오물거리더니 훅, 헛바람을 불었다. 아저씨의 눈빛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이제 어쩌시려고요?”

“우리 같은 쭈그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래도 영업밖에 더 있을까?”


아저씨는 가방에서 전단지 한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카드 한 장 모집해서 수당이 얼마나 떨어지나?”

“그래도 장 당…”

“기껏 10만 원 나오려나?”

“그게 어디에요?”

“보험은 가입시키면 더 나오지만, 인맥이 중요하지. 잘 쌓아둔 인간관계를 팔아먹어야 하니, 뭐 곧 그마저도 다 쫑나버릴 걸? 하지만 이건 달라.”

“그게 뭔데요?”


아저씨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씩 웃으며 다시 한번 검지로 전단지를 톡톡 두드렸다.


“이게 답이야. 이 건강식품은 불로초나 다름없어. 이것만 보여주면, 다 살 수밖에 없어. 자네는 생명의 은인이면서 갑부가 될 거고, 지인들도 덩달아 인센티브를 얻겠지.”

“한 번 줘보세요.” 

“자, 근처에 사무실이 있으니 한 번 놀러오고. 바로 저 건물이야. 이건 내 명함.”


아저씨가 내민 명함에는 ‘미다스 상사, 배철용 마스터’라고 적혀있었다. 마스터라니? 무슨 게임 회사 직급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가 말했다. 


“지금은 마스터지만, 곧 실버도, 골드도, 다이아도 될 거야.”

“뭐, 생각해보고요.”     

“이따 봐.”


바로 옆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아저씨는 서류가방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나는 명함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저씨가 횡단보도를 건너 허름한 건물로 들어섰다. 불에 그슬린 자국이 가득한 건물의 3층 외벽 끝에는 ‘미다스 상사’라 적힌 간판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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