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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11.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3

3. 미다스의 여왕

나는 다시 종로거리에 늘어선 병원 간판을 일별했다.


‘이 도록의 명품들을 보면 간호사들이 혹하겠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첫 번째로 들어선 곳은 한의원이었다. 한의원은 탑골 공원 바로 옆 건물의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천공 한의원입니다.”


황토색 가운과 모자가 무척 토속적인 느낌을 주었다. 코끝으로 한약 냄새가 밀려들었다.


“저는 한국카드에서 나왔는데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간호사가 정색했다.


“잡상인 출입금지입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재빨리 사은품 도록을 내밀었다.


“명품 시계랑 가전이랑, 가방까지 고르는 대로 드릴게요.”


잠시 그녀의 시선이 사진에 머물렀다. 입술이 움씰거렸다. 가입할까 말까 갈등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또 다른 카드를 던졌다.


“현금이 필요하시면 돈으로 드릴게요. 좋아요, 신사임당이면 되실까요?”


한의원이니 좀 더 고전적인 멘트를 날려주었다. 신사임당이라니. 5만 원 권을 상징하는 문구를 떠올리긴 했는데, 말을 뱉어놓고도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미 가입을 해서요. 어제 다른 분이 다녀가셨는데, 7만 원 받았고요.”


헐. 나는 한동안 토우처럼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7만 원씩이나요?” 


내가 말을 더듬자,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더 말하기도 귀찮으니 꺼지라는 신호로 보였다. 나는 사은품 도록을 주섬주섬 챙겨서 가방에 넣고 돌아섰다.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침이라도 맞고 싶지만 돈도 없었다. 


바로 옆 건물의 2층에는 치과가 자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촉’이라는 신호음이 들렸다. 


“어서 오세요. 손오공 치과입니다.”


이번에는 데스크에 흰 가운과 흰 모자를 쓴 간호사 둘이 앉아있었다. 


“저기, 한국카드에서 나왔는데요!”


앞 건물에서 잽을 한 대 맞은 터라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이럴 때일수록 물러서지 않기 위해 목청에 힘을 주었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너무 크게 말해서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도 일제히 나를 보았다. 간호사들은 놀라서 서로 마주보았고, 같이 얼굴을 찌푸렸다. 


“좋은 말 할 때 나가주시죠.” 


왼쪽에 앉은 깡마른 여자가 사오정처럼 혀를 내둘렀다. 오른쪽에 앉은 여자는 손오공처럼 두 눈을 부라리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짙은 눈썹을 따라 머리에 쓴 간호모가 금강권처럼 위아래로 들썩였다. 오공이 말했다. 


“귀 먹었으면 이비인후과 가셔야죠?”


내 눈에는 그녀의 눈썹만 보였다. 두 마리의 작은 로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내 정신은 이미 로드와 함께 근두운을 타고 먼먼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링 바닥에 쓰러질 순 없었다. 덩달아 눈썹을 위아래로 놀려주며 웃었다.


“자자, 사은품 한 번 보세요. 명품 드려요, 명품!”


요괴를 빨아들이는 호리병을 던지듯 번쩍이는 도록을 내밀었다. 대기 손님들의 시선이 사은품 목록에 집중되었다. 나는 라운드걸처럼 한 바퀴 휘 돌았다. 2라운드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안 되었다. UFC라고 해도 3라운드까지는 가야 한다.


“한 대 맞기 전에 나가요. 틀니 하기 싫으면.”


치과의사가 거칠게 문을 열고 나와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치과의사가 되려면 공부만 했을 텐데도 덩치는 산만 하고, 아귀힘도 엄청 셌다. 숨이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팔계는 그대로 나를 들어올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컥컥 소리만 나왔다. 내게 어떤 주문을 외울 짬도 안 주겠다는 것인가. 


“죄, 죄송합니다.”


이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발을 굴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과는 좀 달랐다. 물에서는 상승의 기운이 나를 휘감았다면, 여기서는 공중에 떠있는 데도 계속 땅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바닥없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황망한 내 표정을 본 치과의사는 그제야 저팔계보다는 삼장법사 같은 얼굴로 선심 쓰듯 나를 놓아주었다. 놓았다기보다는 바닥에 툭 던졌다. 땅에 두 발이 닿는 동시에, 등에 문짝이 닿았다. 


-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촉 


다시 그 알림소리가 울렸다. 어릴 때 본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다음 가사가 뭐였더라?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 초코초코 촉, 우리에게 들키지. 나는 염불하듯 가사를 중얼거렸다. 문이 열리고, 한발을 밖으로 내딛자마자 문이 닫혔다. 계단과 계단의 간극이 높아서 한 발 내려놓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원으로 달렸다. 입안이 텁텁해져서 이를 닦고 싶었다. 탑골공원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곳은 의외로 깨끗했다. 칫솔을 사는 것도 아까워 나는 검지로 입안을 휘저었다. 수돗물을 머금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내친김에 머리도 감고 목덜미도 씻었다. 등목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까 먹은 점심이 소화가 안 되었는지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왔다. 나는 화장실 변기에 들어앉았다. 


‘장기매매, 콩팥 한 쪽 2천만 원, 연락 바람.’

‘카드대출, 최대 3백만 원까지, 즉시!’

‘사람모집, 편하게 사무직, 연봉 3천 가능.’

‘채권추심, 돈만 받아주시면 됩니다.’


내벽에는 이런 요상하고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었다. 심지어는 연애할 남자를 찾는다며 어떤 남자가 매직으로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놓기도 했다. 청소부가 몇 번이고 박박 지웠는지 전화번호는 희미하게 보였다. 끝 번호 두 자리는 아예 끌이나 칼로 긁어놓았다. 


- 우웅


볼일을 보면서도 바지춤에 넣어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화기는 진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웅, 하는 울림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반은 이명이었고, 반은 진짜였다. 하루에 한두 번은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왔다. 빚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학자금 대출금이었고, 두 번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지출한 병원비였다. 수술비가 급해서 사채로 천만 원을 끌어다 썼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 빚은 다섯 배가 되어있었다. 아버지가 가입해둔 사망보험이 있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는 자살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자살이라니요! 실족사입니다.”


나는 몇 번이고 보험사를 찾았지만, 보험사에서는 증거를 대라면서 지급을 거절했다. 아직 지어 올리지도 않은 건물에 CCTV가 있을 리 만무했다. 건설사에서는 하청업체 일이라며 딱 잡아땠고, 하청업체는 때마침 망해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1인 시위라는 것을 해보았다. 길쭉한 피켓을 칼처럼 목에 걸었다. 대기업들의 무책임함을 소리 높여 호소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지방지 기자가 그것을 토막기사로 내주고, 시민단체 한 곳에서 잠시 곁을 살펴주었을 뿐 건설현장은 이내 잠잠해졌다. 


멈추지 않으려 했지만, 입에 풀칠은 해야 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기업들의 눈 밖에 날까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되도록 많은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당장 입에 풀칠할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취준생과 겨뤄야 했고, 일자리는 점점 줄었으며, 그놈에 경제는 매해 바닥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상하게도 빚은 갚을수록 늘었다. 


현서는 딱 한번 시위를 하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녀는 아나운서가 되어 나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더 바빠졌고 점점 더 연락이 안 되더니, 헤어지자고 말한 뒤로는 다른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남자가 새 남자친구인지, 아니면 새로 개통한 자인지 나는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은 공무원이라고 했다. 든든한 직업을 가진 남편을 두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할 것이고, 머지않아 TV 속 ‘9시 뉴스’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똥이나 싸자.’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바지춤이 울렸다. 핸드폰을 꾹 눌러보았다. 진동했다. 이번엔 진짜였다. 똥냄새도 진동했다. 학자금 쪽도, 병원비 쪽도 아니었다. 보험 가입이나 대출을 권하는 전화 같았다. 전화도 똥줄도 끊고, 휴지를 더듬었다. 하지만 없었다. 휴지가 있어야 할 곳에 휴지가. 가방에도 카드 모집 신청서 외에는 휴지로 쓸 만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신청서를 휴지로 써버리면 오늘 영업은 이대로 끝이었다. 나는 휴지통을 뒤졌다. 다행히 종로의 외국어 학원을 홍보하는 전단지 한 장이 있었다. 빳빳한 종이를 구기고 비볐다. 다시 그것을 반으로, 반을 반으로 접어 똥을 닦았다. 뱃구레를 쓸며 화장실을 나섰다.    

 

세 번째로 들어선 병원은 비뇨기과였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하고 문을 열었다. 다른 간호사들보다 더 화장을 진하게 한 여인이 감청색 간호복을 입고 있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귀고리와 반지 등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명품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았다. 


“이것들 중 하나를 드립니다.”


나는 다짜고짜 구 팀장이 준 사은품 도록부터 내밀었다.


“돈이 더 낫지 않을까요?” 


간호사는 도록을 도로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놀라서 다시 물었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나요?” 

“하도 영업사원들이 많이 와서 다 알아요. 근데 어디죠?”

“한국카드입니다. 지갑 필요 없으면 돈으로 드릴게요. 5만 원…”


간호사가 샐쭉하게 입을 내밀었다. 


“그럼 7만 원 드릴게요. 더 이상은 어려워요! 수당도 안 남고.” 

“미안요. 그 때문이 아니라, 한국카드면 어제 가입했어요.”

“네? 이 지역 한국카드라면 저희 지점밖에 없는데, 누구한테요? 여긴 제 구역인데!”


갑자기 목소리가 커져서 대기하던 환자들이 나를 쏘아보았다. 


“구세주 팀장이요. 어머, 근데 이거 말해도 되나?”

“구 팀장이요?”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나네요.” 


간호사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7만 원이랑 사은품 도록에 나온 명품 중 하나 고르라고 했어요.”


나는 구 팀장이 준 도록을 다시 가방에서 꺼냈다. 


“이 중에서요?”

“맞아요. 저는 독일제 시계를 골랐어요.”


구 팀장이 내게 배신을 때리다니. 이 건물 라인은 분명 내 담당이라고 했었다.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구 팀장은 어차피 현금 7만 원, 사은품 3만 원씩 써서 수당으로 나오는 10만 원을 다 써도 팀원들이 많으니 인센티브가 잔뜩 나올 것이었다. 놈은 내가 3만 원짜리 사은품 하나만 쓴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비교 대상으로 삼아서 빠르게 카드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


나는 병원 쓰레기통에 카드모집 신청서도, 도록도 다 찢어서 버렸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구 팀장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나는 잘 안다. 그런 놈들일수록 카드모집법의 허점을 이용해 나를 살살 구슬리고, 피를 다 빨았으니 알아서 그만두게 만들 거라는 것을. 하, 왜 이 세상에는 아디다스 모기 같은 놈들밖에 없나. 내게는 아무런 히든카드가 없었다.


‘이건 뭐지?’


서류가방에 남은 전단지가 하나 있었다. 아까 다단계 업체 아저씨가 준 건강식품 홍보지였다. 공교롭게도 병원 창밖으로 미다스 상사가 보였다. 앞으로 다시 회생할 길이 모두 끊겨버렸음을 인정했을 때, 내가 갈 곳은 미다스 상사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미다스 상사가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랐다. 3층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우와아아아!”


안에서 박수소리가 새어나왔다.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았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해진 회색 페인트 조각이 툭 떨어졌다. 밟아서 으깼다. 철문에 귀를 댔다. 누군가 크게 소리치면,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여자의 목소리는 깊고 부드러웠다. 발음도 정확했다.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담긴 건강식품은 당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미다스 왕처럼 손대는 것마다 금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리스트를 내밀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하세요.”

“아으아아아!”


문 안의 여인은 근엄하게 소리쳤다.


“녹용은 그들의 하루를 바꿔줄 것입니다. 흑삼은 그들의 활력을 샘솟게, 당귀는 그들의 삶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스터가, 실버가, 골드가, 마침내 다이아몬드가 될 것입니다!”

“우아아아아!”


다단계의 신도들은 이제 울부짖었다. 여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


“미다스 왕은 금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다이아를 세상에 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선물하세요. 또 다른 회원들을 데려오세요. 그들에게 미다스를 알리세요. 미다스의 손을 갖게 해주세요. 여러분은 축복을 나눠주는 전도자요, 회원에서 마스터로, 실버에서 골드로, 다시 다이아몬드 왕이 될 것입니다!” 


- 쾅쾅쾅쾅!


나는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여인이 안에서 소리쳤다. 


“오오! 또 다른 회원이 자발적으로 가입하려고 합니다. 제 촉을 믿으세요. 구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믿으라, 그러면 얻게 될 것입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복이 있으며, 믿는 자에게 길이 생길 것입니다. 환영해주세요. 자, 이제 문을 엽니다. 모두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질러주세요!” 


마침내 문고리가 돌아가고, 철문이 열렸다. 


“우와아아아!”


수백 명의 미다스들이 무릎을 꿇은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극락에라도 들어선 사람들처럼 반짝이는 얼굴로,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내주었다. 


“저는 취업준비생 이…”


바로 그때, 철문 뒤에서 여신이 나타났다. 


“환영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여자가 두 눈을 떴다. 


“엇?”


그녀는 큰 눈을 뜨고 한 발짝 물러섰다. 나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너는?”


쾅, 문이 닫혔다. 


미다스의 여왕, 현서는 금으로 변한 채 그대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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