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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 Sep 18. 2024

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5

5. 하나개 해변, 노을지는 

금요일 저녁답게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들어갑시다!”


정식으로 출퇴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이런 풍경은 낯설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텅 빈 지하철보다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이 반가웠다. 사람들의 살결과 숨결이, 짜증나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안심시켰다. 


열차가 인천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나는 잠수부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아까부터 바지춤에 넣어둔 핸드폰이 계속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가 심해의 물고기에게 연신 초음파를 쏘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아니 그녀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아서 나는 애써 핸드폰을 꺼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열차가 동인천역에 도착할 때쯤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열었을 때, 나는 서너 통의 부재중 통화 알림과 더불어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 메시지가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인천수산시장, 무대섬, 알지? 거기서 봐.


현서였다. 


나는 멍하니 내릴 준비를 했다. 그녀가 어떻게 내가 인천에 온 걸 알았을까. 가능성은 세 가지였다. 처음부터 나를 미행했거나, 종각역에서 나를 봤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추정했거나. 


첫 번째 가능성은 거의 제로였다. 아까 나는 현서를 피해 일부러 건물 뒤쪽의 외부 계단으로 내려왔고, 그대로 골목과 골목을 돌아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가능성도 마찬가지. 퇴근 시간에 종각역에서 사람 찾기는, 멸치볶음에서 꼴뚜기 찾기와도 같았다. 아니, 꼴뚜기는 차라리 쉬울까? 그래, 멸치볶음에서 플랑크톤 찾기라고 하자. 그렇다면 현서는 그저 감으로 내가 집으로 돌아갈 걸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무슨 연어도 아니고…”


세 번째 이유가 맞다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인천은 내 고향이기도 했지만, 같은 대학을 나온 현서와 내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현서는 내 눈빛에서 아직 자신을 향한 미련, 또는 그리움을 읽은 것일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왠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얘기해줄 필요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제 아무 상관이 없어.”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아악, 저거, 방사능 비잖아!”


돌아보니 학생들이 저만치 계단을 올라서고 있었다. 그들한테서 ‘후쿠시마’, ‘원자력’, ‘쓰나미’ 같은 단어들이 들려왔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수산시장이 문득 걱정되었다. 앞으로 원자력 오염수가 바다에 전부 풀리면 어민들은, 또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엉뚱하게도 먼바다에서 침몰한 할아버지의 트롤선을 떠올렸다. 


‘할아버지, 바다를 지켜주세요.’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릴 적 할아버지가 원양태를 잡으러 먼바다로 떠날 때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에게 원양어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섬이고, 국가였다. 딴 나라에서 그가 돌아올 때마다 내 키는 한 뼘씩 자랐고, 할아버지의 어깨는 두 뼘씩 굽었다. 그럴 때마다 난 할아버지가 인어라도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반신이 아닌, 상반신이 물고기인 사람을 말이다. 


“넌 꼭 공무원이 돼서 붙박여 살아. 뱃사람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이러다 물고기 밥이 되는 일도 다반사지.”


아버지랑 어머니는 행여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할까, 할아버지랑 내가 같이 있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어린 내게 할아버지의 구레나룻은 하늘거리는 지느러미 같았다. 그것은 볼 때마다 길어졌고, 움직임은 더 유연해졌다. 


인도네시아 남동부 해안에서 할아버지가 탄 트롤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린 나는 머리에 등불 달린 심해어 장난감을 떠올렸다. 


“바닷물고기들은 빛을 쫓는 습성이 있어서 불을 켜놓으면 쏠리기 마련이다.”


죽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저 할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그가 먼먼 바닷속 탐험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천 신포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할머니는 장사를 그만두었다. 


“물고기들이 다 인면어(人面魚)같아. 거기서 할아범 얼굴이 보이는구나.”


바로 그때였다. 


“끼익-”


맞은편에서 들어오던 열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먹이를 가로채려는 붕어 떼처럼 사람들이 전철의 앞머리로 모여들었다. 나는 반대편에 서있어서 품을 들이지 않고 앞쪽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철로의 한 가운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감색 정장 차림이었다. 직장인이었을까. 한 발짝 더 다가서서 얼굴을 보니 내 또래였다. 남자가 꿈틀거렸다. 강바닥에서 누군가 자신을 건드려주길 기다리는 민물고기처럼, 한번 쏘아줄 기세로 쿨럭, 피를 토했다. 사람들은 누구도 안전선 밖으로 내려서지 못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기장의 안내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빨간 연어 알처럼 쏟아져 나왔다. 


남자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노란선을 넘어 역사 끝에 선 나도 중심을 잃고 지느러미를 허우적거렸다. 쿨럭, 남자가 이번엔 묽은 피를 한가득 쏟아냈다. 인공호흡이 필요해보였다. 이대로 남자가 숨을 쉬려면 호흡기관이 하나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망설이는 사람들 틈에서 그대로 철로로 뛰어내렸다. 남자가 피를 뒤집어쓴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남자의 붉은 낯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바짓단이 울렸다. 오줌이 세는지, 전화기가 진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눈을 다시 떴다. 그리곤 남자가 누운 자리까지 온 힘을 다해 헤엄쳐갔다. 나는 곧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그의 가슴을 눌렀다. 그때마다 남자의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여기 빨리요! 빨리!”


몇몇 사람들이 선로로 뛰어들어 나를 거들었다. 나 역시 이성을 잃은 채 뭐라뭐라 소리쳤다. 


“여기, 지혈부터요. 빨리! 붕대도 갖다 줘요!” 


나는 그대로 피를 쏟는 남자의 입에 내 입을 가져다댔다. 그리곤 있는 힘껏 숨을 쉬었다. 내가 숨이 막힌 건지, 그가 막힌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핏물을 헤집었을까.


“쿨럭!”


남자가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내며 눈을 깜빡였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구조대가 도착했다. 역사 위에 모여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일으켰다. 남자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끔벅거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물었지만,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게 잘한 일일까?’ 


분명 남자의 눈에는 고마움보다 원망이 서려있었다.



                                                                                                                                                  

아무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곳은 무의도였다.


이런 꼴로 엄마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 진정이 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대학 시절 현서와 종종 찾아왔던 하나개 해변에 서있었다. 현서한테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여름밤의 바닷바람은 무척 시원했다. 이제 막 해가 수평선 너머로 졌는지, 어스름이 깔린 바다에 노을빛이 감돌았다. 무의대교가 개통하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관광지가 됐지만, 전에는 일일이 배를 타고 들어와야 했다. 나는 종종 할아버지 후배들의 고깃배를 빌려 타고 현서와 섬에 들어와 해안절벽이 늘어선 해변을 걷곤 했다. 


다행히 휴가철이 지나면서 인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몇몇 연인들이 해변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마치고 텐트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 쪽의 나무데크 길로 찬찬히 걸어 들어갔다. 해안절벽을 따라 바다 위에 높다랗게 조성해놓은 그 길을 걷자면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도 들었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난간을 쓸면서 안쪽으로 걸었다.  


“하, 하…”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해상관광탐방로의 가장 안쪽까지 걸었다. 탐방로 끝은 원형으로 되어있어서, 그 자체로 바다 위에 뜬 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곳을 한 바퀴 돌면서 솔숲이 드리워진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리키며 현서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세상이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휘청거렸다.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내 몸의 균형추가 고장 났는지 원형바닥이 소용돌이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쿵


나는 이내 엎어진 채로 나무 난간 사이로 허리를 빼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웨엑- 우웩-”


아까 술을 마셨는데도 토사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헛구역질은 끊이질 않았고, 바닷바람은 연신 내 이마를 후려쳤다. 나는 조금 더 허리를 난간 밖으로 내밀었다. 


“어엇?”


갑자기 내 몸이 붕 뜬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떤 여자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바다에 고꾸라지려나? 그때였다. 누군가 거센 손아귀로 내 발목을 잡아채는 기분도 들었다. 


“이봐, 미쳤어?”


중년 남자가 뭐라뭐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거꾸로 허공에 매달린 채 바다를 보았다. 어스름이 어둠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진 도화지에 누군가 검은 크레파스를 마구 덧칠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검으니, 차라리 어지럼이 덜했다. 서서히 남자의 손에 끌어올려지면서 나는 다시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잘. 난간 사이로 몸이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몸을 비틀어 남자를 도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거꾸로 매달려 있었기 때문인지, 갑자기 아까 먹었던 술과 삼치 등속이 솟구쳐 올라왔다. 


“우웩-”


나는 누군가의 얼굴에 잔뜩 토사물을 쏟아놓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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