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이 죽을랍니다 #17
17. 너와 나, 무대라는 섬
먼발치에 ‘인천수산시장’ 간판이 보였다. 나는 입구 쪽에서 낙지랑 광어, 연어 등을 사서 ‘무대섬’으로 향했다. 늘 그 자리, 알전구가 반짝이는 살짝 어두운 구석 자리였다.
현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꼭 막이 내린 무대 같잖아. 바닥도 마루고. 시멘트벽도 시원시원하고. 토 쏠릴 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면 되고.”
그러면서 늘 먼저 소주를 깠다.
“그러나 우리의 막은 아직 내려가지 않았어.”
그럼 나는 술잔을 내밀며 답했다.
“아직 올라가지도 않았는걸.”
다음 수순도 같았다.
“무대섬, 탕탕!”
“무대섬, 탕탕!”
‘무대섬’이란 사람들 사이에 자리한 ‘무대라는 섬’을 뜻하는 동시에, ‘무대에 서다’를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현서와 나는 인천수산시장의 돌계단 옆에 자리한 간판도 없는 이 집을 ‘무대섬’이라 부르곤 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꿈을 낚았고, 그 꿈의 회를 가르고 잘랐으며, 다시 잘근잘근 씹거나 삼켰으며, 종내는 다 토하고 눈물을 쏟곤 했다.
바로 그 자리에, 현서는 먼저 와있었다.
“석정아, 왔니?”
나는 그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미다스 상사에서 봤던 정장이 아닌, 대학시절 즐겨 입던 옷을 입고 왔다. 게다가 화장까지 말끔히 지웠다.
“왜 그래, 무섭게.”
웨이브 진 단발머리에 턱 선이 시원하게 뻗은 얼굴과 도톰한 입술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한층 눈빛이 검고 깊어졌지만, 흰 티에 청색 반바지 차림은 아직도 그녀를 학생처럼 보이게 했다.
“넌 변한 게 하나도 없네.”
현서가 말했다. 말할 때마다 두 눈을 깜빡이는 버릇도 여전했다. ‘다른 남자들이 윙크하는 줄 알 테니 조심해’라고 습관처럼 하던 우스갯소리를 꺼내려다 만다. 이제는 그 ‘다른 남자’가 다름 아닌 내가 되었으니까.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궁금한 것부터 묻고자 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현서가 먼저 물었다.
“내가 왜 미다스 상사에 있었냐고?”
“아니, 그때 내가 인천으로 갈 줄 어떻게 알았어?”
현서는 전혀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서울에 간 뒤부터는 금욜 저녁마다 인천에 내려왔잖아. 그때는 나도 아직 인천에 있을 때였고.”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다.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정은 없었다. 안도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현서도 피식 웃으며 포개어진 소주잔을 뽑아 나와 자신 앞에 하나씩 놓았다.
나는 물부터 컵에 따라 현서 쪽으로 밀었다. 현서는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찾아 내 앞에 놓았다. 나는 휴지 한 장을 뜯어 현서의 앞자리에 받쳤다. 우리는 잠시 할 말을 고르며 행인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주 한 잔씩을 들이켰을 때, 내가 물었다.
“임신했다더니, 애기 엄마가 술 마셔도 돼?”
현서의 표정이 묘해졌다.
“누구한테 들었어?”
“뭐 동기들 SNS 보면 금방이니까.”
“네 소식은 잘 몰랐는데.”
“영업하는 거 올려서 뭐 하게.”
현서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나도 아나운서 거의 된 줄 알 텐데…”
나는 다시 현서에게 술을 따랐다. 현서는 그 말에는 답하지 않고 그대로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한두 잔은 괜찮겠지.”
나는 ‘남편은?’이라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현서는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소주잔을 치켜든다.
“한 잔 더 줄래? 남편은 야근 중이거든.”
“그래도 애 엄마가…”
“자꾸 애 엄마, 애 엄마 하면 나 그냥 집에 간다?”
나는 말없이 현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번엔 내가 줄게.”
현서가 술을 들이켜자마자 손을 뻗었지만 나는 술병을 뒤로 뺐다.
“빨리 안 내놔?”
그렇게 몇 순배 술이 오갔고, 광어와 멍게는 반쪽짜리가 되었다. 낙지 탕탕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서가 물었다.
“영업은 할 만 해?”
“그럭저럭.”
“수입은 괜찮고?”
“아직… 이제 배우는 중이랄까.”
“그래도 잘만 하면 이쪽이 돈은 훨씬 벌잖아.”
현서는 ‘이쪽’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다스상사에서 교육할 정도면, 너는 꽤 벌겠구나?”
내 말에 현서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러더니 촉촉한 눈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미안해. 나도 민망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 이 말 전하고 싶어서 온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 그렇지 뭐. 그래도 잘 살아서 다행이야. 남편도 공무원이고…”
현서는 대답 없이 옆에서 안주를 준비하는 주인아저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덩달아 그쪽을 보았다.
‘탕, 탕, 탕, 탕!’
주인아저씨가 꿈틀거리는 낙지를 칼로 가르고 있었다. 먹물과 내장이 삐져나왔다. 매번 그 모습을 보는데, 그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오금이 저렸다. 어떨 때는 내가 그 낙지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는 다시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무슨 직인데?”
“세무서에서 일해.”
현서가 반쯤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 잔을 내밀었다. 나는 다시금 소주병을 내 앞으로 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아저씨는 큰 칼로 낙지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현서가 피식 웃었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애가 생기니까 공무원 월급이 좀 버겁더라. 그래서 나도 다단계에 입문한 거야. 당분간 꿈을 미루려고.”
‘꿈’이라는 단어에 현서의 눈빛이 다시금 촉촉해졌다.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서 숱하게 주고받았던 술의 이름. 꿈이라는 이름의 달면서 쓴 그 술. 나는 다시 술을 들이키며 웃어주었다.
“뭐, 여유 생기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나도 그렇고.”
“그래, 고맙다. 이석정.”
“힘내라, 한현서.”
때마침 산낙지가 나왔지만 선뜻 그것을 입에 넣지 못했다. 나는 녀석의 토막 난 다리를 소금장에 빠뜨렸다. 참기름과 소금으로 범벅이 된 낙지가 몸부림을 쳐댔다. 한 때 물속에서 자유롭게 활개를 쳤던 기억이 잔뜩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그것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을 잘게 씹으며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컥-”
갑자기 낙지의 흡반이 목젖에 달라붙었다.
“아이쒸-”
온몸을 들썩이며 몸을 뒤집었다. 현서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학창 시절, 언제나 나를 설레고 또 들뜨게 했던 저 웃음소리. 나는 애써 밭은기침을 하며 몸을 꼬았다.
현서가 옆자리에 앉아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낙지만 씹었다. 그러더니 마치 비밀 얘기를 하듯 내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남편이 내가 숨 막힌데. 집이 좁은 어항 같데.”
잠시 주변에 정적이 흘렀고, 빗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말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소금장에서 아프다, 아프다 소리치는 산낙지를 이번에는 초장에다 빠뜨렸다. 얼마간 몸을 꼬아대던 낙지의 형해는 이제 제각기 사지를 늘어뜨린 채 몸부림치기를 포기했다. 나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현서는 언제 술잔을 채웠는지,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나 술을 마신 지 너무 오래되었는지 금세 낙지처럼 흐느적거렸다.
“나는 낙지가 부러워.”
나는 행여 그녀가 바닥으로 넘어질까,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서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무슨 소리야. 이제 집에 가야겠다.”
“잠깐만. 잠깐만 숨 좀 쉬자.”
현서는 갑자기 어지러운 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스르르, 내 어깨에 기댔다.
“엇…”
나는 뜬금없이 일본열도에 닥친 해일을 떠올렸다. 원전에서 새어 나온 방사능과 그게 흘러들어간 바다를 생각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고기와 그것이 헤엄쳐온 바닷길을 상상했다. 가고시마와 제주도를 돌아 인천까지 넘어온 물고기와, 그 횟감이 타고 넘은 우리들의 목구멍을 생각했다.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그 목구멍을 따라 현서의 혓바닥이 파고든 건 그때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현서의 어깨를 밀쳤다. 중심을 잃고 낙지처럼 흐느적대던 그녀가 옆으로 쓰러지려 했다. 그녀의 어깻죽지를 주인아저씨가 잡아채지 않았다면 현서는 수조에 머리를 부딪쳤을지도 모른다.
현서가 작은 손으로 제 이마를 툭툭 두드리더니 일어나려고 했다.
“차라리 두지. 그러면 물고기들은 자유잖아.”
“괜찮니?”
다가서서 현서의 팔을 붙들자, 그녀가 팔을 빼면서 말했다.
“혼자 갈 수 있어.”
“택시?”
“친정은 가까워. 지하철.”
나는 동인천역까지 현서를 배웅했다. 현서보다 먼저 지하철 패스를 개찰구에 대고 안으로 들어섰다.
“너도 어디 가게?”
개찰구 밖에서 현서가 혀를 쏙 내민다.
“어서 들어와.”
나는 등불을 단 어선처럼 모둠발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현서도 곧 개찰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역사 안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청새치가 바닷물 위를 휘도는 것처럼 뻣뻣하고도 거침없이. 이내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리자, 현서가 홱 돌아서더니 가만히 나를 보았다. 어쩐지 이제 다시는 현서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현서는 반바지에 찔러 넣은 손끝을 살짝 빼서 지느러미처럼 흔들었다.
“그래, 잘 가.”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문이 열리고 다시 문이 닫혔다. 열차는 이내 전기 장어처럼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현서는 문 쪽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검지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왜?”
내가 입 모양을 크게 해서 묻자, 그녀도 입술을 모아 답했다.
“바보.”
멀어져 가는 전철을 향해 나는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