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남자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은퇴를 하면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존재가치가 있긴 할 것일까? 잉여 인간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이런 고민에 우울했다.
오랜만에 나간 합창연습에서 J가 불쑥 말을 건넸다.
"브런치작가 전시 하던데, 갈 거야?" "아니, 보긴 했는데 별내용이 없는 것 같아 신청 안 했어, 선물 주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아니야 조금 주긴 해" "아 참 그렇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번엔 내가 J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얘기한 그 전시 말이야, 다시 보니 못 찾겠네 링크 좀 보내줘!"
J에게 동기부여를 받고 브런치 전시를 보러 성수동으로 달려갔다.
맨 먼저 리셉션에서 작가와 비작가를 구분했다. 작가에게는 즉석에서 사진촬영과 브런치작가 명함 같은 카드를 만들어 주었고 '작가의 여정'이라는 워크북도 주었다. 인턴 작가에 신청하는 부스에서 기웃거리니, 현장에서 작가 신청으로 하면 바로 인턴작가로 등록해 준다고 한다.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하니 깜짝 놀라는 직원 표정에 내가 더 놀랐다.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작년에 수상한 5명의 대표작가를 소개하는 코너였다. 작가들의 소품과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 같았다.
글 쓰는 방법이 적혀 있는 메모패드가 10여 개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 '글로 사진 찍기'와 '누군가에게 말하듯 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글로 사직 찍기"를 큐레이터 정혜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되는 말이고 아하 그렇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혼자 여행 갔을 때, 핸드폰을 숙소에 두고 거리에 나갔다. 숙소 앞 광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장면들을 사진을 찍듯이 기록했습니다. 눈앞에 원하는 만큼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글로 기록하는 거예요.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기록해 보면 특별해집니다.' 소리와 시간, 움직임을 표현하면서 내가 감독이 되어 기록해 보세요."
또 다른 카운터 벽면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라는 커다랗게 쓰인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도 받았다.
한 달간 글쓰기 주제를 알려 주기도 했다. Day1부터 Day30까지 서른 개의 예시가 있었다. 추억, 꿈, 이별 같은 우리 삶에 필요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주제들이라 생각했다. 다른 코너에는 10개의 질문지가 있었다. 매일 글쓰기 보다 좀 더 무거운 주제들이었다. 가령, '없애고 싶은 아픈 기억이나 나의 콤플렉스는?',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들이지만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진을 찍어두었다.
올해 초부터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점들이 있다. 글쓰기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글쓰기를 하면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갈수록 더 각박해져 가는 현대인사회에 더 필요해지는 건 이런 생각이 아닐까. AI에게 많은 걸 내어 주어야 하는 미래에는 더 인간들에게 더 절실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런 글쓰기 플랫폼 사업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에서 주관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전시는 카카오라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브런치 스토리'에서 주관했다.
프랑스 대입논술 바칼로레아처럼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유용한 도구, 글쓰기.
글쓰기로 당신의 내면을 함께 나누시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