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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Jul 02. 2023

기록인가 예술인가

< 지난 2023년 3월 23일에 강의자료로 쓴 글을, 오늘 강의 중에 토론하다 생각나서  올립니다. >

이 사진들이 뭐냐고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화엄사 흑매화 포토스팟입니다. 제가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제 피드에 뜬,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캡처한 것입니다. 다들 사진 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때를 맞춰서 촬영을 다녀온 듯합니다. 이 사진 외에도 더 많은 사진이 있습니다만 굳이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동일한 구도입니다(예시 사진들을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사진들이 안 좋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아름다운 것을 보면 촬영하고 싶어지고, 좋은 것들을 보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이 구도로 사진을 촬영하는 이유가, 이 구도나 구성이, 빛이나 다른 사진 요소들이 가장 좋게 배치된 것이기에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진의 특성에 대해서 말할 때, 

사진은 기록으로서의 역할과, 현장성과 우연성의 특성 그리고 시공간을 잘라내는 고립성 등을 말합니다. 그럼 이 사진은 어느 특성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요?

기록성인가요, 현장성인가요?(기다리고 촬영했으니 우연성은 제외입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기록성인가요? 의식했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했든 결국은 하나의 기록으로 남았으니 기록성인가요? 단순히 현실을 촬영하는 기록성을 떠나 현실의 순간을 사진가가 통제했으니 현장성인가요? 

저는 그동안, 사진은 그 사진을 촬영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으며, 그 사람의 감성, 감정, 현장까지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주는 사진은 촬영자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많은 사진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반영하는 사진만 보여주자고 말씀드렸었고요.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1862년 파리 고등법원에서 ‘사진은 분명한 예술적 표현 수단이며, 사진의 저작권도 창작품으로 인정된다’라고 판결함으로써 사진이 예술작품임을 인정했습니다. 사진이 예술인가 하는 문제에서 봤을 때, 위에서 보여드린 사진은 예술작품인가요? 굳이 예술성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요?

포토스팟에서 촬영되는 많은 사진을 촬영하지 마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제의 내가 찍었고, 오늘의 내가 찍었으며, 내일의 내가 찍을 그 장소의 그 사진은 누구든지 촬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사진은 적어도 다른 앵글을 고민하고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저기 예시된 사진들은 물론 잘 찍은 사진들입니다. 저런 구도를 촬영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 수 구요. 하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이미 초보 수준을 훨씬 벗어난 전문가들입니다. 나만의 앵글도 촬영해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물론 자신만의 앵글을 고민하고 촬영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진의 창작성과 창의성에 대해 생각할 때 항상 하는 질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인가?

둘째, 피사체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는가?

셋째, 내가 만약 소비자라면 내 사진을 돈 주고 살 것인가?

굳이 이 세 가지 질문에 충족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내 눈앞에 놓여있는 것들은 동일하지만, 촬영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이 밤 인스타 사진들을 보다가 기나긴 푸념 늘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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