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덕 Jun 25. 2022

어떻게 살것인가? "윌리엄 로"의 탁월한 성찰


최근 몇 달간 어떠한 생각이 계속 내 주변을 맴돈다.

그것은 나의 '삶의 목적'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평생을 애쓰며 살아간다. 물론, 그 마음속 기저에는 어찌어찌해서 인생이 쉽게 한 방에 잘 풀리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언가에 홀린 듯 일제히 "돈"이 주는 위안에 미어캣처럼 목을 내밀고 그 기회를 바라본다.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기반을 쌓아 편한 노년을 살아보고자 한다. 대부분 빨리 쌓은 건 오래가는 법이 없고, 인간에 속한 세상 어떤 것도 영속하는 건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빠른 업적을 희망하는 우리 주변의 선량한 이웃들에게 행운의 여신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을 먹고 사느라 노력한 결과는 불과 두 세대가 지나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쉽사리 잊혀진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렸는지 진심 궁금해하거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이나 '미술', '시', '법칙' 같은 먹고 사는 것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누군가 그것을 기억한다. 멍 때리는 듯한 그 창작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면 쓸데없는 짓을 하며 빈둥거린다고 손가락질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엉뚱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 자연'에 숨겨놓은 놀라운 신의 법칙을 발견하는 이들.

그들이 "예술가"이며,

신이 보기엔 오직 그것만이 가치 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버티는 영속성을 지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시간을 쓰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할까?

·

·

·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윌리엄 로의 말에 뼈저린 감명을 받는다.

' 발견'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이 근본적인 진실에 주목하라. 죄악은 예외겠지만 자연과 생명체 속에 작용하는 모든 것은 자연과 생명체 속에서 일어나는 신의 작업이다.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이외에 생명체의 힘이 미치는 것은 전혀 없으며, 그의 자유의지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신의 활동에 협력하거나 저항하는 것 이외에 어떤 힘도 갖고 있지 않다. 자유의지가 있는 생명체는 존재에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고, 자연의 활동을 조금도 수정할 수 없다. 다만 생명체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상태나 위치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서 이전에 느끼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끼거나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 윌리엄 로






윌리엄 로 (William Law, 1686년 - 1761년 4월 9일)는 영국 국교회의 신부였으나 임마누엘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그의 지위를 양심의 문제로 내려놓았다. 그의 저서인 《경건한 삶을 위한 엄숙한 부르심》(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 1729년)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는 윌리엄 윌버포스,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 등이 있다.


그는 아이작 뉴턴과 제이콥 봄을 매우 깊이 존경하였다. 그는 뉴턴에 대하여 '대단한 철학자'로 봄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조명을 받은 도구'라고 평하였다.


- 위키백과



이전 14화 렌터카 자유여행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