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유용성
2019년 목련이 질 무렵, 우리 동네 근처의 "낭독" 모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독서 모임이란 다양한 책을 읽기 위한 일종의 '넛지', 즉 스스로를 옭아매는 장치인 셈이다. 혼자 하는 독서는 아무래도 익숙한 책에만 손이 가기 마련이기에.
나는 이미 다른 독서 토론 모임에 속해 있었지만, 책을 읽는 행위에도 관성이란 게 있는 것인지, 책과 거리가 멀었던 과거의 아쉬움이 무의식 속에서 불쑥 올라와 끊임없이 그 허기를 채우려고 책 모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몇 군데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중 동탄의 "낭독"모임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미리 책을 읽어가야 하는 독서토론과 달리, 모임 시간에만 책을 읽으면 되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그동안 벌여 놓은 일들과 다양한 책을 접하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부대꼈던 문제가 단번에 해소되어서 좋았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모임에서는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책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동안 휘몰아쳐 읽었던 자기 계발서, 심리 서적들, 경제 관련 책들에서 벗어나 고전 소설이나 철학서를 읽는 것은 낯설지만 즐거운 자극이었다. 그런데, 책의 종류보다 생소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 큰 어른들이 함께 둘러앉아 목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 행위였다.
나의 소싯적 직업이 아나운서이기도 했거니와 여러모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에는 익숙한 사람이었고, 한동안 암사동에 위치한 점자도서관에서 '소리 책' 만드는 목소리 봉사에 참여한 경험도 있어서 혼자 하는 낭독은 익숙한 터였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 낭독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내향 성향의 사람이라면 처음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낭독 모임이 편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어색한 구간뿐 아니라 타인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지점도 그랬다. 서로의 호흡이 익숙해질 때까지 보조를 맞춰가며 읽어 나가고,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료를 찾아보느라 잠시 멈춰 서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읽다 보면 집에서 혼자 독서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낭독 모임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낭독'은 전통적으로 '묵독'보다 훨씬 오래된 책 읽는 방법이다. 책의 문명에 관련한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는, 2006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의 낭독회를 보며 거기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독일에서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미 '낭독회'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 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 기념회에 '낭독'을 도입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단다.
정여울 작가는 책 <소리 내어 읽는 즐거움>에서 낭독의 유용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첫째, 오감의 활성화를 꼽았는데, 소리를 통해 예민한 감수성과 촉각이 살아나며, 무언가를 더 깊이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집중력도 생긴다.
두 번째, 좋은 작품에는 해맑은 감동의 에너지가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약 5분만 그러한 좋은 글을 읽어도 우울한 기분이 사라져 마음 챙김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셋째,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느낌을 주어 아픔을 다독이고 치유할 수 있다.
함께 낭독 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면면은 다양하지만, 낭독에 대해 입을 모으는 부분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묘하게도 공감과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오는 텍스트의 재해석은 눈으로 읽으면 놓쳤을 무언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며 수면 위로 펼쳐 놓는다.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목젖에서 가늘게 나오는 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전으로부터 올라와 힘이 느껴지는 울림을 가진 사람도 있다. 호흡도 제각각이다.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사람. 문장과 문장 사이가 격하게 느긋한 사람. 우리는 함께 읽는 동안 그렇게 다양한 재질의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각자의 목소리에 담겨 재생산된 글은 눈으로 따라가며 읽고 귀를 통해 한 번 더 내 안으로 들어온다. 물론 타인의 속도를 배려하느라 치른 대가에 비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나 자신에게 더 섬세하게 말을 걸어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일상이 빡빡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던 건 아닌지, 혹은 책을 따라가기에 나의 기초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어린 날, 운동회에서 함께 다리를 묶고 반환점을 돌던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처음에 삐걱이던 다리는 점차 같은 호흡으로 한 몸처럼 움지이는 짜릿한 순간이 오듯이, 여러 사람이 각자의 목소리로 책을 읽는 이곳에도 그 지점이 존재한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작가는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낭송이란,
존재가 또 하나의 텍스트로 탄생하는 과정,
몸이 곧 책이 되는 과정이다.
낭송을 일상화하면
자연스럽게 쾌락에 미혹되지 않는다
그녀의 말 대로라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내 몸으로 또 하나의 텍스트를 창조하는 셈이다. 함께 낭독한다는 건, 그러니까 타인이 창조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회이다. 그 속에서 "낭독의 즐거움"을 자연스레 누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날의 "이인삼각 달리기"는 멋지게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