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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Jul 02. 2022

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얼마 전 옛 친구들을 만났다. 각자가 살아가는 터전도 멀어졌고 삶의 방식도 달라서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만나는 게 전부지만, 30년의 인연은 우리들의 느슨한 시간의 간격조차 견고하게 묶어주고 있었다.


후후 불어가며  국밥과 돌솥 낙지를 배부르게 먹고는 카페를 찾다가 가까이 눈에 띄는 으로 들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집의 인테리어도 주변의 사람들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을 시간을 확보하는  좋았다. 빠른 걸음으로 커피와 차를 주문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 S 지난겨울, 초하룻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간의 이야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가족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달랐다.


S 자신의 집에서 마치 주인처럼 살고 있는 고양이  마리 이야기를  주었다. 반려동물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 눈을 반짝이며 직접 찍은 영상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엔가 위로받아야 한다.


동그마니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 있을 즈음, 친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갑작스런 진동과 균열이 그 친구 마음에 떠올랐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틈을 메꾸지 못하고 눈물이 핑그르르 맺혔는데, 그건 친구 S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얼마 전의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많이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



© Counselling, 출처 Pixabay



각자의 삶에는 아픈 가시들이 있다. S는 두 아들을 키웠다. 첫째는 그야말로 독립적이며 살가움이란 별로 없는, 일반적인 아들의 전형인 성격을 지녔는데, 사춘기 시기에는 친구에게 엄마로서 가슴 아픈 시련을 안겨주며 많은 걸 내려놓게 만들었다. 둘째는 형과는 사뭇 달라, 딸같이 살가운 성격으로 늘 엄마 편이 되어 준 아이였다. 둘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날 고양이 얘기를 할 때처럼 눈에서 꿀이 떨어졌던 걸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었다.


둘째는 자신의 형이 심한 사춘기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유학을 가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고등학교를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는 그곳에서도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도 모범적으로 했다. 입을 댈 것이 없는 둘째는 유학 생활 또한 S에게 더없는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그런 마음을 말로 떠벌이거나 내색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언뜻 스치며 하는 이야기 속에서, 첫째의 무심함으로 채울 수 없었던 자녀로부터의 보상을 둘째에게서 충분히 받고 있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 아이가 미국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아픈 마음을 돌보고 치료를 받으며 학교를 알아보고 전학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아이는 거부했다. 극심한 '번아웃'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지낸 지 몇 년이 지나고 있었다. 둘째가 친구의 온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 다행히도 첫째인 형은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잘 걸어가고 있다. 친구는 둘째의 마음이 말끔히 회복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미련을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나 : "왜 눈물이 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친구에게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


S : "왜겠니... 대학 졸업장이 아직도 중요한 거겠지. 속물처럼.. ㅠ. 우리 아이가 뭐가 모자라 남들 가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게 된 걸까..."

나 :"그러게.. 어릴 때 그렇게 잘하던 아이가.. 둘째는 특별히 섬세한 아이라 세상을 다 보듬느라 너무 힘들었나 봐."

S : "둘째가 건강해진다면 다른 거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많이 아플 때는 건강해지는 거 말고는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좀 나아진 것 같으니까 또 학교엔 왜 못 가? 이런 마음이 생겨."


친구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잘 버텨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왜 굳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것일까?


얼마 전 팀에서 <인정 투쟁>에 대해 다뤘던 내용이 생각났다. "악셀 호네트"는 이 책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 뒤에 감춰진 사회적 투쟁의 근본 원인을 밝혀냈는데, 어떻게 무시와 모욕이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마침내 폭동이나 봉기의 원인이 되는가 등을 다루었다.


호네트는 '인정투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나는, 한 '개인'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던져 준 가치관에 따라,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내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관계 속에서의 개인'을 성찰해 보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사회적 지위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자랑하며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랑 중독"의 세상 속에 살아가며 피로감을 느끼나 보다.


세상은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을 보면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내 아이를 '대안 학교'에 보낼 때에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궁금하다며 세세하게 물어보았는데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또 다른 욕망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직장" 취업하지 않고 다른 길을 가겠다는 MZ 세대를 혀를 차며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기성세대와 달라지기를 욕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선배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답답함을 충분히 느꼈을 테니까.




나는 친구의 눈물과 그녀 자신의 감정의 근원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었다. S 충분히 성숙한 엄마이기에 자신의 욕망의 재물로 아들을 몰고 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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