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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Jul 19. 2021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네 인생의 이야기

우리 가족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SNS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각자의 사회적 관계에 혹시나 불편함을 주진 않을까 하는 일종의 배려랄까.


그런데

어느 날 이 사진을 인**그램에 올리자마자 바로 딸아이의 댓글이 달렸다


나도!!

어느새 사회인이 된 딸아이는 직장이 가까운 할머니 댁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지내다가 주말에 집에 오곤 하는데, 올 때마다 무언가 입에 맞는 음식을 해주고픈게 엄마의 마음이다.


집에 도착한 딸아이는 한 그릇 뚝딱 엄마표 콩국수를 해치우고는 세상 다 가진 표정을 한다.







딸과 관련해 참 많은 감정을 떠오르게 한 작품이 있는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이다.


테드 창은 중국계 이민 2세로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과학 소설계의 보물로 불리는 작가다.


그의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편의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 <어라이벌(Arrival)>의 원작이다. 한국에서는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책으로 접한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에서는 미처 표현되지 못한 디테일한 감정선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뱅크스 박사는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외계 생명체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우리 인류의 언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선형적 방식의 언어이다. 반면 헵타 포드로 불리는 그들의 언어는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인지하는 "시간의 전체를 통달한" 언어이다.



언어학자인 그녀도 그들의 언어를 배워가며 헵타 포드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발현된다.

현재에 존재하지만 미래를 이미 안다. 그들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언어학자인 뱅크스가 딸에게 말하듯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지금 막 아이를 가지려는 중이지만 이미 딸의 미래를 알고 있다. 이 집에서 얼마 큼의 추억이 쌓일지도, 이후 13살의 사춘기 아이가 엄마에게 어떤 귀여운 반항을 할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이 독백한다.


이야기의 전체 구성은 헵타 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큰 주제로 가져가면서도, 액자 형식으로 딸아이와 관련된 가족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깊은 감정을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은 아마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대한 통화였는지도 몰라. 첫 번째는 물론 산악 구조대에서 걸려올 전화였겠지. 그 시점에 네 아빠와 나는 일 년에 많아봐야 한 번쯤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네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겠지.



뱅크스의 딸아이가 스물다섯 되던 해, 산악 모임에서 등반 도중 추락사했다는 걸 알려온 전화였다. 그녀는 헵타 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이후 이미 시간을 초월해 미래와 과거를 한 번에 인지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스물다섯에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와 일상을 살아가는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뱅크스는 딸아이가 산악회 모임을 가입하겠다고 했을 때 만류해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소설 속에는  하나의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외계 언어 습득을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던 , 딸아이의 다섯  무렵 언어 습득 과정을 떠올리며 자세히 묘사한 지점이었.



"엄마." 너는 뭔가 부탁할 때 쓰곤 하는,
짐짓 아무 일도 아니라는 식의 말투로 이렇게 말하지.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물론이지 우리 아가, 물어봐."


아이들이 언어를 개념화, 구조화하는 와중에 생기는 헷갈려하는 지점을 딱 집어 표현 무릎을 치게 만들었고, 그런 표현 속에 녹아있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그때의  감정 속으로 나를 초대했다.








어느새 성인이 된 딸아이를 바라보며 너무도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가끔은 딸아이의 미래를 떠올려볼 때가 있다. 그 느낌이 음... 뭐랄까..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면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가슴 가득 느끼게 되는데,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나의 마음과 맞닿아있다.


인간은 언어의 구조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선형적으로 살아간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오늘을 다그치며 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나의 엉뚱한 상상이 유용하다. 미래에서 지금의 나를 조감하듯 바라보는 상상이 현재의 삶을 여유롭게도 또는 의미 있게도 만들어 준다.


내 삶의 미래에 미리 가 본다면, 아등바등 사는 나에게 미래의 내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지금으로도 충분해.
소중한 건
지금 네 안에 느끼고 있는
그 마음뿐이야.




그래서

오늘 닷새만에 집에 오기 전, 엄마가 번거롭지 않으면 콩국수를 먹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려 깊은 딸아이에게,

나는 온 맘을 다해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다.



사랑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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