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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Aug 11. 2022

침대에서 떨어진 날


지난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접어들던 새벽녘, 나는 그만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날 밤, 약간은 괴로운 불면의 시간을 지나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들었던 모양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어슴푸레 기억도 없는 순간,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듯 반 바퀴를 돌다가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악!"


침대를 떠나 허공에서 몸이 허우적거리는 찰나, 순간적으로 나는 오른팔에 힘을 주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착지 법을 쓸 새도 없이 침대 모서리에 팔이 질펀 미끄러지며 꼬리뼈 부근의 엉덩이로 쿵 떨어지고 만 것이다.


© mcknight_shane, 출처 Unsplash



내 소리에 놀란 남편은 잠결에 "괜찮아?"를 외쳤지만 내 외마디 비명으로 알 수 있듯 괜찮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안방 침대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짐작할 수 있는데, 내 아담한 키로는 침대에 걸터앉을 때에도 발뒤꿈치를 살짝 들며 올라타듯 앉아야 할 만큼 높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침대에서 떨어질 수 있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황당한 상황에 스스로에게 실소를 터트렸다. 


정신이 좀 들고 나서 엉거주춤 일어서서 엉치뼈 근처를 만져 보았다. 떨어질 때의 충격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아.. 다행이다...."


걸음을 떼어 본다. 다행히 방을 지나 거실로 걸음이 옮겨진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나 보다 짐작하며, 순간 맘속으로 중얼거린다. 

"감사해요..."


마음이 좀 안정되자 아침이 되려면 멀었기에 침대에 다시 누워본다. 아... 아프다. 엉덩이와 다리 방향을 이리저리 조정해 가며 덜 아픈 자리를 찾아 잠을 청한다.



© ErikaWittlieb, 출처 Pixabay



나의 또렷한 기억 저장고 속에 '아기침대'가 자리한다. 이제 26살이 된 딸아이는 작고 귀여운 난간이 있는 침대가 필요 없어진 지 오래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아기침대를 사러 다니던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쇼핑몰.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은 IMF에 돌입했고, 그로 인해 회사에서는 파견을 급작스럽게 종료하고 직원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아이를 낳은 지 6주 만에 예기치 못한 이삿짐을 싸던 나날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에 도착한 짐 속에서 아기침대를 꺼내 조립하던 때를 기억한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 꼼지락거리는 자그마한 발가락이 신기했고 손가락이 몇 개인지 세며 감사했었다.


그렇게 소중했지만, 육아에 지치는 순간은 수시로 밀려들고, 칭얼대는 아이를 재우려고 아기 침대에서 꺼내 엄마 아빠의 침대에 눕히고는 토닥였다. 그래야 나도 누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이라도 해 놓으려면, 아이가 잠든 주위 사방으로 베개를 둘러 성을 쌓아야 했다. 혹시라도 깨어나 뒤척이다 굴러 떨어질까 봐 조심하며 방지 막을 세웠지만 그조차도 허사가 된 순간이 왔다.


"쿵!" 

그건 흡사 수박이 깨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깜짝 놀라 방으로 뛰어갔더니 자그마한 딸아이는 머리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채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내 가슴은 더 큰소리로 '쿵!' 내려앉았다. 바로 아이를 건져 올리듯 안았더니 그제야 울기 시작한다. 처음엔 간헐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거세게 세상의 모든 서러움을 끌어안은 듯 가열차게 운다.



© Pexels, 출처 Pixabay                                



25년 전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그 순간을 재현하듯, 나는 그렇게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날의 아이는 며칠 더 종종 놀라긴 했지만, 머리에 숨구멍이 있었고 뼈도 유연했으며 실컷 울고는 서서히 괜찮아졌다. 


지금의 나는 나이도 들고 뼈도 유연하지 않으며, 침대를 스치며 내려온 오른쪽 팔뚝과 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한 엉덩이엔 커다란 멍이 들었다. 그리고, 이 아픔은 예측컨대 꽤 오래갈 것이다.


시간의 간격은 그렇게 내 삶이 되었다. 이제 나는 경험이 깃든 연륜으로, 지금의 내 몸은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결국은 나을 거라는 걸 알기에, 멋모르고 미숙했던 젊은 엄마인 그때보다 덜 조급하고 마음도 편안하다.


시간의 철길에서 삶을 실어 나르는 기차 칸은 바퀴가 평행하게 진행하는 듯하다가가도 어느 시점에 순간적으로 교차한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휘어진 시간처럼 나는 지금 그때의 우는 딸아이를 끌어안고 내 아픈 엉덩이를 다독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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